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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形 第四

제4편 군대의 形勢


形者는 戰守之形也니 軍無常形하여 因敵變化而爲之形이라 故로 若決積水於千仞之溪하니 喩其汪然而不可測하고 沛然而不可禦也니라

形이란 싸우고 수비하는 형세이니, 군대는 일정한 형세가 없어서 적에 따라 변화하여 형세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저장해놓은 물을 천 길의 시내에 쏟아놓는 것과 같은 것이니, 그 물이 많아서 측량할 수 없고 쏟아져서 막을 수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孫子曰 昔之善戰者는 先爲不可勝하여 以待敵之可勝이니

孫子가 말하였다.

옛날에 전쟁을 잘한 자는 먼저 <수비를 잘하여 적이> 승리할 수 없게 만들어놓고 적에게 승리할 수 있는 틈을 기다렸으니,

孫子言 古昔大將之善戰者는 自己先爲不可勝之形하여 以待敵人可勝之形이니 如趙奢厚集其陳하여 以待秦兵하고 又先拒北山하여 以待其來而勝之1) 是也라

1) 趙奢厚集其陳……以待其來而勝之:B.C. 270년, 秦나라가 韓나라를 치기 위해 閼與로 진군해 오자, 趙王은 趙奢를 將軍으로 임명하여 군대를 보냈는데, 趙奢가 병력을 많이 집결하여 진영을 굳게 지키면서 시기를 기다리다가 秦軍을 대파하고 閼與를 구원하였다. 자세한 과정과 戰術은 83쪽 주 1) 참조.

孫子가 말하였다.

옛날 대장 중에 전쟁을 잘한 자는 자기가 먼저 적이 승리할 수 없는 형세를 만들어놓고 적에게 승리할 수 있는 형세를 기다렸으니, 예컨대 趙奢가 자기의 진영에 많은 병력을 집결시켜 秦나라 군대를 대비하였고, 또 먼저 北山을 점거하여 秦나라 군대가 오기를 기다려 승리한 것이 이것이다.


不可勝은 在己하고 可勝은 在敵이니라

승리할 수 없음은 자기에게 있고, 이길 수 있음은 적에게 있다.

不可勝은 在修己之備하고 可勝은 在乘敵之虛라

승리할 수 없음은 자기의 대비를 닦음에 있고, 승리할 수 있음은 적의 허점을 틈탐에 있다.

故로 善戰者는 能爲不可勝이요 不能使敵之必可勝이니라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자는 적이 자기를 이길 수 없게는 하여도, 적으로 하여금 우리가 반드시 이기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故로 將之善戰者는 能爲自己不可勝之形이요 不能敵人之必可以勝이니 謂己有守禦之備요 敵無可乘之形也라

그러므로 장수 중에 전쟁을 잘하는 자는 <적이> 자기를 이길 수 없는 형세를 만들 수는 있어도, 우리가 적을 반드시 이기게 할 수는 없으니, 자기에게는 수비하고 방어하는 대비가 있고, 적은 틈탈 만한 허점의 형세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故로 曰勝可知而不可爲라하니

그러므로 ‘승리는 알 수는 있어도 만들 수는 없다.’ 하였으니,

自己有制勝之形이라 故로 可知요 敵人無可乘之形이라 故로 不可爲也라

자기에게 승리할 수 있는 형세가 있으므로 알 수는 있고, 적에게 틈탈 만한 허점의 형세가 없으므로 만들 수는 없다고 한 것이다.


不可勝者는 守也요

승리할 수 없는 경우에는 지키고,

敵人無可乘之形이면 不可以勝이니 且守以待之라

적에게 틈탈 만한 형세가 없으면 승리할 수 없으니, 우선 수비하며 기다려야 한다.


可勝者는 攻也니

승리할 수 있는 경우에는 공격하여야 하니,

敵人有可勝之形이면 則出奇하여 攻而取之라

적에게 승리할 수 있는 형세가 있으면 기이한 계책을 내어 공격해서 점령하는 것이다.

守則不足이요 攻則有餘니라

수비는 부족할 때에 하고 공격은 有餘할 때에 한다.

所以守者는 謂取勝之力이 有所不足이라 故로 且待之요 所以攻者는 謂勝敵之力이 已有其餘라 故出擊之니 言非百勝이면 不與之戰이요 非萬全이면 不與之鬪也라

수비하는 이유는 적을 이길 만한 힘이 부족한 바가 있으므로 우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요, 공격하는 이유는 적을 이길 만한 힘이 이미 여유가 있으므로 나아가 공격해야 한다는 것이니, 백 번 싸워 백 번 승리할 경우가 아니면 더불어 결전하지 않고, 만 번 온전한 계책이 아니면 더불어 싸우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善守者는 藏於九地之下하고 善攻者는 動於九天之上이니라

수비를 잘하는 자는 九地의 아래에 감추고, 공격을 잘하는 자는 九天의 위에서 출동하듯이 한다.

善能守者는 韜形晦迹하여 如藏匿於九地之下하니 言隱之深而不可知也요 善能攻者는 勢迅聲烈하여 如動作於九天之上하니 言來之速而不可備也라 九地는 喩其深이요 九天은 喩其高라 尉繚子曰 若邃於天하며 若秘於地1) 是也라

1) 尉繚子曰……若秘於地:≪尉繚子≫ <兵談>에 “군을 통솔하는 者는 군대의 일을 깊은 땅속에 숨겨놓은 듯이 은밀히 하고, 높은 하늘 위에서 움직이듯 형태가 없이 하여 이루어 나가야 한다.[治兵者 若秘於地 若邃於天 生於無 故關之]”라고 보인다.

수비를 잘하는 자는 자신의 형체를 감추고 행적을 감추어서 九地의 아래에 감춘 듯하니 깊이 숨어서 알 수 없음을 말한 것이요, 공격을 잘하는 자는 형세가 빠르고 소리가 맹렬하여 마치 九天의 위에서 동작하는 듯하니, 쳐들어옴이 신속하여 대비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九地는 그 깊음을 비유하고 九天은 그 높음을 비유하였다. ≪尉繚子≫에 이르기를 ‘하늘처럼 아득한 듯하며 땅처럼 숨은 듯하다.’는 것이 이것이다.


故로 能自保而全勝也니라

그러므로 지키면 스스로 保全하고, 싸우면 온전히 승리하는 것이다.

守則固라 故로 能自保하고 攻則取라 故로 能全勝이라

지키면 견고하므로 스스로 保全하고 공격하면 점령하므로 능히 온전한 승리를 거두는 것이다.


見勝이 不過衆人之所知는 非善之善者也요

승리를 봄이 보통 사람이 아는 바를 넘지 않는 것은, 잘하는 중에 잘하는 자가 아니요,

見吾已勝之形이 不過衆人之所知면 非所謂善之善者也니 衆人은 但知破軍殺將之勝하고 而不知所以制勝之道하나니라

자신이 승리할 수 있는 형세를 보는 것이 보통 사람이 아는 바를 넘지 않으면, 이른바 잘하는 중에 잘하는 자가 아니니, 보통 사람들은 다만 적군을 격파하고 적장을 죽이는 승리만 알고, 승리하게 만드는 방도를 알지 못한다.


戰勝에 而天下曰善은 非善之善者也니라

싸워서 승리했을 적에 천하 사람들이 잘 싸웠다고 말하는 것은, 잘하는 중에 잘하는 자가 아니다.

與人戰而勝에 天下稱之曰善이라하면 非所謂善之善者也라 天下는 但稱其智名勇功하고 而不知其見微察隱하여 取勝於無形之道하나니라

적과 싸워 승리했을 적에 천하 사람들이 잘 싸웠다고 칭찬하면, 이른바 잘하는 중에 잘하는 자가 아니다. 천하 사람들은 다만 그의 지혜로운 명성과 용맹한 공로만 칭송하고, 幾微를 보고 隱微함을 살펴서 형체가 없이 승리를 취하는 방도는 알지 못한다.


故로 擧秋毫는 不爲多力이요 見日月은 不爲明이요 耳聞雷霆은 不爲聰이니라

그러므로 가을의 털끝을 드는 것은 힘의 많음이 되지 못하고, 해와 달을 보는 것은 눈의 밝음이 되지 못하고, 귀로 천둥소리를 듣는 것은 귀의 밝음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秋毫者는 毛至秋而末銳하니 言至輕而易擧也요 日月은 言至明而易見也요 雷霆은 言至大而易聞也라 故로 擧秋毫之末은 不爲之多力이요 見日月은 不爲之明目이요 聞雷霆은 不爲之聰耳라 引此三者하여 以喩衆人之見勝과 天下之稱善者하니라

秋毫란 터럭이 가을에 이르러 끝이 가는 것이니 지극히 가벼워 들기 쉬움을 말한 것이요, 해와 달은 지극히 밝아서 보기 쉬움을 말한 것이요, 천둥소리는 지극히 커서 듣기 쉬움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가을의 털끝을 드는 것은 힘의 많음이 되지 못하고, 해와 달을 보는 것은 눈의 밝음이 되지 못하고, 천둥소리를 듣는 것은 귀의 밝음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를 인용하여 보통 사람들이 승리함을 보는 것과, 천하에 전쟁을 잘한다고 칭찬하는 자를 비유한 것이다.


古之所謂善戰者는 勝於易勝者也라

옛날에 이른바 전쟁을 잘한다는 자는 쉽게 승리하게 만들어놓고 승리하는 자이다.

易勝者는 見微察隱하여 破於未形也니 若交兵接刃하여 以力制敵이면 是難勝也라 古人之所謂善戰者는 勝於易勝하고 而不勝於難勝耳니라

쉽게 승리한다는 것은 幾微를 보고 隱微함을 살펴서 나타나지 않았을 때에 깨뜨리는 것이니, 만약 兵器를 가지고 交戰해서 힘으로써 적을 제압한다면, 이것은 어렵게 승리하는 것이다. 옛사람이 이른바 전쟁을 잘했다는 것은, 쉽게 승리하게 만들어놓고 승리한 것이요, 승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다.


故로 善戰者之勝也는 無智名하고 無勇功이니라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자의 승리는 지혜로운 명성이 없고 용맹한 공로가 없는 것이다.

故로 善戰者之取勝也는 無智名之可稱이요 無勇功之可見이니 謂陰謀潛運하여 取勝於無形이라 故로 天下不稱料敵制勝之智하고 衆人不見搴旗斬將之功也라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자가 승리함은 지혜로운 명성을 칭찬할 것이 없고 용맹한 공로를 볼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속으로 계책하고 은밀히 운용하여 형체가 없이 승리한다. 그러므로 천하 사람들은 적을 헤아려 승리하는 지혜를 칭찬하지 않고, 사람들이 적의 깃발을 뽑아오고 적장을 목 베는 공을 보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故로 其戰勝不忒(특)이니

그러므로 전쟁함에 승리가 어긋나지 않는 것이니,

能見於未形하고 察於未萌이라 故로 百戰百勝하여 不差忒矣라

나타나지 않았을 때에 볼 수 있고 싹트지 않았을 때에 살필 수 있으므로 백 번 싸우면 백 번 승리하여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不忒者는 其所措必勝하여 勝已敗者也니라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조처하는 바가 반드시 승리하도록 이미 패한 자에게 승리하는 것이다.

戰勝不差忒者는 其所以制勝之道 在勝敵人有已敗之形也라

‘싸움에 승리하여 어긋나지 않는 것’은 그 승리하는 방도가 적에게 이미 패할 형상이 있음으로 인하여 승리함에 있는 것이다.


故로 善戰者는 立於不敗之地하고 而不失敵之敗也니라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자는 패하지 않을 자리에 서고, 적의 패할 기회를 잃지 않는 것이다.

故로 將之善戰者는 自己先立於不可敗之地하고 而不失敵人之可敗者也라 審法令하고 明賞罰하며 便器械하고 養武勇하여 吾有不可勝之形은 是立於不敗之地也요 乘敵人有可勝之形하여 攻而破之는 是不失敵之敗也라

그러므로 장수 중에 전쟁을 잘하는 자는 자기가 먼저 패하지 않을 자리에 서고 적의 패할 수 있는 기회를 잃지 않는 것이다. 법령을 살피고 상벌을 분명히 하며 병기를 편리하게 하고 武勇을 길러서 <적이> 나에게 승리할 수 없는 형세가 있게 함은 패하지 않을 자리에 서는 것이요, 적에게 승리할 수 있는 형세가 있음을 틈타서 공격하여 깨뜨림은 적이 패할 기회를 잃지 않는 것이다.


是故로 勝兵은 先勝而後求戰하고 敗兵은 先戰而後求勝하나니라

이 때문에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승리한 뒤에 싸움을 청하고, 패하는 군대는 먼저 싸운 뒤에 승리하기를 구한다.

以此之故로 勝兵은 先有必勝之形然後에 求與人戰하고 敗兵은 先與人戰然後에 求偶爾之勝이라

이 때문에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승리할 수 있는 형세가 있은 뒤에 적과 싸움을 청하고, 패하는 군대는 먼저 적과 싸운 뒤에 우연히 승리하기를 구하는 것이다.


善用兵者는 修道而保法이라 故로 能爲勝敗之政이니라

用兵을 잘하는 자는 道를 닦고 법을 보전한다. 그러므로 능히 승패의 정사를 하는 것이다

善能用兵者는 修治自己不可勝之道하고 保守自己不可勝之法이라 故로 能爲制勝敗敵之政1)이라 或曰 先修道義하여 以和其衆然後에 保法令하여 以戢其下하여 使民畏而愛之라 故로 能勝人之敗라하니 於義亦通이니라

1) 能爲制勝敗敵之政:≪孫子髓≫에는 “舊註에 ‘勝敗之政’을 ‘制勝敗敵’이라 하였으니, 이는 ‘勝於已勝已敗’의 句를 맺은 것이다.” 하였으며, “그러므로 그 軍政이 반드시 이미 승리함에서 승리하고 이미 패한 적에게 승리함에서 나오는 것이다.[故其軍政 必出於勝已勝 勝已敗也]”라고 註하였다.

용병을 잘하는 자는 <적이> 자기를 이길 수 없는 방도를 잘 닦아 다스리고, 자기를 이길 수 없는 법을 잘 보전하여 지킨다. 그러므로 승리하여 적을 패하게 하는 정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먼저 道義를 닦아서 병사들을 화합하게 한 뒤에 法令을 보전하여 아랫사람들을 단속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두려워하고 사랑하게 하므로 능히 패한 적에 승리한다.” 하니, 뜻이 또한 통한다.


兵法은 一曰度요 二曰量이요 三曰數요 四曰稱이요 五曰勝이니

兵法은 첫 번째는 度이고 두 번째는 量이고 세 번째는 數이고 네 번째는 稱이고 다섯 번째는 勝이니,

此는 先爲不可勝之形하여 以待敵之可勝也라 或戰或守하며 安營布陣에 皆要知此니라

이는 먼저 적이 승리할 수 없는 형세를 만들어놓고, 적에게 승리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다. 혹은 싸우고 혹은 수비하며 陣營을 편안히 지키고 포진함에 모두 이것을 알아야 한다.


地生度하며

땅은 度를 낳으며,

地는 謂遠近, 險易, 廣狹之形也라 度有五하니 謂分寸尺丈引1)也라 地有遠近, 險易, 廣狹之形하니 當以丈尺忖度(탁)之니 此는 地所以生度也라 安營布陣에 要知此니 如八陣開方之法2)이 是也라

1) 分寸尺丈引:모두 길이를 재는 單位로, 1分은 약 3mm이며, 10분을 1寸, 10寸을 1尺, 10尺을 1丈, 10丈을 1引이라 한다.

2) 八陣開方之法:八陣은 여덟 개의 진영으로, 洞當․中黃․龍騰․鳥飛․折衝․虎翼․握機․天衡을 이르며, 이것을 天․地․風․雲․龍․虎․鳥․蛇로 표현하기도 한다. ≪小學紺珠≫

開方은 면적을 계산하는 수학용어인데, 정사각형을 이른다.

땅은 멀고 가까움과 험하고 평탄함과 넓고 좁은 지형을 이른다. 度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分․寸․尺․丈․引을 이른다. 땅에는 멀고 가까움과 험하고 평탄함과 넓고 좁음의 지형이 있으니, 마땅히 丈과 尺을 가지고 헤아려야 하니, 이는 땅이 度를 낳는 이유이다. 陣營을 편안히 하고 포진할 적에 이것을 알아야 하니, 八陣圖와 開方 같은 법이 이것이다.


度生量하며

度는 量을 낳으며,

量有五하니 謂龠(약)合升斗斛(곡)1)也라 地旣以丈尺忖度其遠近險易廣狹之形이면 而糧餉亦當以斗斛酌量其多少之用이니 此는 度所以生量也라 或曰 酌量彼我之强弱也라

1) 龠(약)合升斗斛(곡):모두 容量의 單位로, 龠은 1合의 2분의 1이며, 1合은 약 180㎖에 해당한다. 10合을 1升, 10升을 1斗라 하며, 옛날에는 10斗를 1斛이라 하였으나, 뒤에는 5斗를 1斛이라 하였다.

量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龠․合․升․斗․斛을 이른다. 땅을 이미 丈과 尺을 가지고 그 멀고 가까움과 험하고 평탄함과 넓고 좁음의 지형을 헤아렸으면, 軍糧을 또한 마땅히 斗와 斛으로 그 많고 적은 쓰임을 헤아려야 하니, 이는 度가 量을 낳는 이유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적과 우리의 强弱을 참작하여 헤아리는 것이다.” 하였다.


量生數하며

量은 數를 낳으며,

數有五하니 謂一十百千萬也라 糧餉旣以斗斛酌量其多少之用이면 而士卒亦當以千萬計算其衆寡之數니 此는 量所以生數也라 或曰 用機變之數也라

數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一․十․百․千․萬을 이른다. 군량을 이미 斗와 斛을 가지고 그 많고 적은 쓰임을 헤아렸으면, 병사 또한 마땅히 千․萬으로 그 많고 적은 수를 계산하여야 하니, 이는 量이 數를 낳는 이유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機智權變의 數를 사용하는 것이다.” 한다.


數生稱하며

數는 稱(저울)을 낳으며,

稱有五하니 銖兩斤鈞石1)也라 士卒旣以千萬計算其衆寡之數면 而力亦當以鈞石稱較其輕重之分이니 此는 數所以生稱也라 或曰 稱較彼我之勝負也라

1) 銖兩斤鈞石:모두 重量의 單位로, 1銖는 약 1.56g으로 24銖를 1兩이라 하고, 16兩을 1斤, 30斤을 1鈞, 4鈞을 1石이라 한다.

稱에는 다섯 가지가 있으니 銖․兩․斤․鈞․石이다. 병사를 이미 千과 萬으로 그 많고 적은 숫자를 계산했으면, 병력을 또한 鈞과 石을 가지고 그 輕重의 구분을 저울질하여 비교하여야 하니, 이는 數가 稱을 낳는 이유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적과 우리의 勝負를 저울질하여 비교하는 것이다.” 한다.


稱生勝하니

稱은 勝(승리)을 낳으니,

力旣以鈞石稱較其輕重之分이면 而吾必勝之形을 從此而可知矣니 此는 稱所以生勝也라 孟子曰 權然後에 知輕重하고 度然後에 知長短1)이라하니라 尉繚子曰 無過於度數2)라하니 度는 謂尺寸이요 數는 謂什伍니 度以量地하고 數以量兵하여 地與兵相稱則勝하나니 五者皆因地形而得이라 故로 自地而生之也니 李靖五陣이 隨地形而變3)이 是也라

1) 權然後……知長短 :이 내용은 ≪孟子≫ <梁惠王 上>에 그대로 보인다.

2) 無過於度數:이 내용은 ≪尉繚子≫ <十二陵 第七>에 보이는데, 原文에는 ‘無過’ 뒤에 ‘在’자가 있는바, 原文대로 해석하면 “잘못함이 없음은 度와 數에 달려있다.”라고 풀이하여야 한다.

3) 李靖五陣 隨地形而變:李靖(571〜649)은 唐나라 초기의 名將으로 衛國公에 봉해져 李衛公으로 불린다. 五陣은 五行陣으로, 太宗이 五行陣이 어떠한 것인지를 묻자, 李靖은 대답하기를 “이는 본래 五方의 색깔을 따라 이름한 것으로 方陣․圓陣․曲陣․直陣․銳陣이니, 실로 지형을 따라 만든 것입니다.” 하였다. ≪李衛公問對 中≫ 五方의 색깔이란 東(木靑)․西(金白)․南(火赤)․北(水黑)․中央(土黃)의 색깔을 이른다.

병력을 이미 鈞과 石을 가지고 그 輕重의 구분을 저울질하여 비교하였으면, 우리가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형세를 이것을 가지고 알 수 있으니, 이는 稱이 勝을 낳는 이유이다. ≪孟子≫에 이르기를 “저울질한 뒤에야 輕重을 알고 자로 재본 뒤에야 길고 짧음을 안다” 하였고, ≪尉繚子≫에 이르기를 “度와 數를 넘지 않는다.” 하였다.

度는 尺과 寸을 이르고 數는 什과 伍를 이르니, 度로써 땅을 헤아리고 數로써 병력을 헤아려서 땅과 병력이 서로 걸맞으면 승리하니, 이 다섯 가지는 모두 지형으로 인하여 얻어진다. 그러므로 땅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니, 李靖의 五陣이 지형으로 따라 변한 것이 이것이다.


故로 勝兵은 若以鎰(일)稱銖하고 敗兵은 若以銖稱鎰이니라

그러므로 승리하는 군대는 鎰을 가지고 銖를 다는 것과 같고, 패하는 군대는 銖를 가지고 鎰을 다는 것과 같다.

鎰은 二十兩이요 銖는 十二分也라 故로 必勝之兵은 若以二十兩之鎰로 稱十二分之銖하고 必敗之兵은 若以十二分之銖로 稱二十兩之鎰하니 言以有制之兵으로 對無制之兵하여 輕重不侔也라

鎰은 20냥이고 銖는 12푼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승리하는 군대는 20냥의 鎰을 가지고 12푼의 數를 다는 것과 같고, 반드시 패하는 군대는 12푼의 數를 가지고 20냥의 鎰을 다는 것과 같으니, 통제가 있는 군대를 가지고 통제가 없는 군대를 상대하여 輕重이 똑같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勝者之戰이 若決積水於千仞之溪者는 形也니라

승리하는 자의 싸움이 저장해놓은 물을 천 길의 시내에 쏟아놓는 것과 같은 것은 형세이다.

勝兵而與人戰에 若決蓄積之水於千仞之溪者는 此軍之形也라 以水之深而不可測이요 決而不可禦로 喩善守者韜形晦迹하여 如在九地之下하니 敵莫測其形1)이요 及乘人之虛而出이면 其鋒을 亦莫能當也라

1) 若決蓄積之水……敵莫測其形:≪孫子髓≫에는 “舊註에 ‘千仞之溪는 깊고 얕음을 측량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였으니, 잘못이다. 千仞은 천 길 높이 매달려있음을 말한 것이요, 그 깊음을 말한 것이 아니다.” 하였다.

‘승리한 군대로서 적과 싸울 적에 마치 미리 저장해놓은 물을 천 길의 시내에 쏟아놓는 것과 같은 것’이 군대의 형세이다. 물이 깊어서 측량할 수 없고 쏟아져 막을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수비를 잘하는 자가 형체를 감추고 행적을 감추어서 九地의 아래에 있는 것과 같음을 비유하였다. 적이 그 형체를 측량할 수 없으니, 적의 허점을 틈타 출동하면 그 銳鋒을 또한 당할 수 없는 것이다.



兵勢 第五

제5편 군대의 氣勢

勢者는 破敵之勢也니 乘敵人有可破之勢하여 奮兵擊之면 如破竹하고 如摧枯拉朽(랍후)하여 而勢不可遏이라 故로 下文에 以轉圓石於千仞之山으로 喩其勢之險而不能止也하니라

勢란 적을 깨뜨리는 氣勢이니, 적에게 격파할 만한 기세가 있음을 틈타서 군대를 내어 奮擊하면,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고, 마른 가지를 꺾고 썩은 나무를 줍는 것과 같아서, 기세를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아랫글에 둥근 돌을 천 길의 산에서 굴리는 것을 가지고 그 기세가 험하여 그칠 수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孫子曰 凡治衆을 如治寡는 分數 是也요

孫子가 말하였다.

무릇 많은 병력을 다스림을 적은 병력을 다스리는 것과 같이 함은 分․數가 이것이요,

孫子言 凡治衆多之兵을 如治寡少之兵者는 分數 是也니 分은 謂偏裨卒伍之分이요 數는 謂十百千萬之數라 各有統制하여 而大將總其綱領이라 故로 治百萬之衆을 與治寡同하나니 此는 韓信所以多多而益善1)也라

1) 韓信所以多多而益善:韓信([〜B.C. 196)은 漢나라의 개국공신으로 楚王에 봉해졌으나 高祖의 의심을 받아 長安으로 압송되었다가 풀려나 淮陰侯로 강등되었다.

어느 날 高祖가 마음을 열고 韓信과 함께 將帥들의 능력의 고하와 장단점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는데, 高祖가 “내가 만일 장군으로 출전한다면 그 재능이 몇 명의 병사들을 거느릴 수 있겠는가.”라고 묻자, 韓信이 “폐하께서는 10만 정도라면 무리 없이 통솔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답하였다.

高祖가 다시 “그렇다면 公은 몇 명이나 거느릴 수 있는가.”라고 묻자, 韓信은 “臣은 多多益善이라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하였다.

高祖가 웃으면서 “그렇다면 어째서 公은 나에게 사로잡힌 것인가.” 하니, 韓信이 “폐하께서는 비록 병사를 많이 거느릴 수 있는 재능은 부족하시지만, 장군을 거느릴 수 있는 재능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제가 폐하의 포로가 된 것입니다. 더구나 폐하는 하늘의 도움을 받고 계시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史記 권92 淮陰侯列傳≫

孫子가 말하였다.

무릇 많은 병력을 다스림을 적은 병력을 다스리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은 分․數가 이것이다. 分은 偏裨와 卒伍의 신분을 이르고, 數는 十․百․千․萬의 數를 이른다. 각각 통제가 있어서 대장이 그 綱領을 총괄하므로 백만의 군대를 다스리기를 적은 병력을 다스리는 것과 같이 하니, 이는 韓信이 ‘병력이 많을수록 더욱 좋다.’고 한 이유이다.

鬪衆을 如鬪寡는 形名이 是也요

많은 병력을 싸우게 하기를 적은 병력을 싸우게 하는 것과 같이 함은 形․名이 이것이요,

鬪衆多之兵을 如鬪寡少之兵者는 形名이 是也니 形은 謂旌旗麾幟之形이요 名은 謂金鼓笳笛之名이라 以其言不相聞也라 故로 爲之金鼓笳笛하여 使聽之而進止하고 以其視不相見也라 故로 爲之旌旗麾幟하여 使視之而左右라 故로 鬪百萬之衆을 與鬪寡同하니 此는 王翦所以用六十萬而勝楚1)也라

1) 王翦所以用六十萬而勝楚:이 내용은 134쪽 주 2) 참조.

많은 병력을 싸우게 하기를 적은 병력을 싸우게 하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은 形․名이 이것이다. 形은 旌旗와 麾幟(깃발)의 형상을 이르고, 名은 징과 북, 피리와 젓대의 名聲(소리)을 이른다.

말이 서로 들리지 않기 때문에 징과 북, 피리와 젓대를 만들어서 병사들로 하여금 이 소리를 듣고서 전진하고 멈추게 하고, 視力이 서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旌旗와 깃발을 만들어서 병사들로 하여금 이것을 보고 왼쪽으로 가게 하고 오른쪽으로 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만의 군대를 싸우게 하기를 적은 군대를 싸우게 하는 것과 같이 하는 것이니, 이는 王翦이 60만 대군을 사용하여 楚나라를 이긴 이유이다.


三軍之衆을 可使必受敵而無敗者는 奇正이 是也요

三軍의 병력을 반드시 적의 침공을 받아도 패함이 없게 하는 것은 奇․正이 이것이요,

三軍之衆을 可使人人必受敵而無敗者는 有奇有正이 是也라 大衆所合이 爲正이요 將所自出이 爲奇니 善戰者는 或以奇爲正하고 或以正爲奇하여 使敵莫測하나니 此는 吾三軍所以必受敵而無敗也라

三軍의 병력을 병사마다 반드시 적의 침공을 받아도 패함이 없게 하는 것은, 奇가 있고 正이 있는 것이 이것이다. 많은 병력을 모으는 것을 正이라 하고, 장군이 직접 지휘하여 출동시키는 것을 奇라 한다. 전쟁을 잘하는 자는 혹 奇兵을 正兵으로 만들고 혹 正兵을 奇兵으로 만들어서 적으로 하여금 측량하지 못하게 하니, 이는 우리 三軍이 반드시 적의 침공을 받아도 패함이 없는 이유이다.


兵之所加에 如以碬(하)投卵者는 虛實이 是也니라

병력을 가하는 곳에 마치 숫돌을 가지고 알을 깨는 것과 같게 하는 것은 虛實이 이것이다.

兵之所加에 如以礪石投鳥卵之易者는 以我之實로 擊彼之虛也라 碬는 礪石也라

병력을 가하는 곳에 마치 숫돌을 가지고 새 알을 깨는 것처럼 쉽게 하는 것은, 우리의 實을 가지고 적의 虛함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碬는 숫돌이다.


凡戰者는 以正合하고 以奇勝이니라

무릇 전투는 正兵으로 交戰하고 奇兵을 만들어 승리한다.

凡戰者는 以正兵合之하고 以奇兵으로 或左或右하여 出其不意而勝之니 如鄭伯禦燕師할새 以三軍軍於前하고 以潛軍襲其後1) 是也라

1) 鄭伯禦燕師……以潛軍襲其後:B.C. 718년, 鄭나라 사람이 衛나라의 牧 지방을 침공하여 東門의 전쟁을 보복하니, 衛나라 사람은 燕나라 군대를 거느리고 鄭나라를 공격하였다. 鄭나라의 祭足(채족)․原繁․洩駕가 三軍을 거느리고 연군의 전면을 공격하는 한편, 曼伯과 子元으로 하여금 은밀히 制 지역의 군대를 이동하여 후면을 공격하게 하였다. 燕나라 사람들은 앞에 있는 鄭나라의 三軍만을 대비하였을 뿐, 배후의 制人에 대해서는 전혀 예측하지 못하였다. 6월에 鄭나라의 두 公子가 制人을 거느리고 燕나라 군대를 北制에서 격파하였다. ≪春秋左氏傳 隱公 5년≫

무릇 전투에는 正兵을 가지고 적과 交戰하여 싸우고, 奇兵을 가지고 혹은 왼쪽으로 출동하고 혹은 오른쪽으로 출동하여 적이 뜻하지 않은 곳으로 나아가 승리하는 것이니, 예컨대 鄭伯이 燕나라 군대를 막을 적에 三軍을 앞에 진열하고 은밀히 伏兵으로 그 뒤를 습격한 것이 이것이다.


故로 善出奇者는 無窮如天地하고 不竭如江海하니 終而復始는 日月이 是也요 死而更生은 四時 是也라

그러므로 奇兵을 잘 출동시키는 자는 무궁무진함이 하늘과 땅과 같고, 다하지 않음이 강과 바다와 같으니, 끝마쳤다가 다시 시작함은 해와 달이 이것이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은 四時가 이것이다.

故로 善出奇兵者는 無窮如天地之久하고 不竭如江海之深하여 旣終而復始를 如日月之循環하며 旣死而復生을 如四時之往來하나니 皆喩出奇之無窮也라

그러므로 奇兵을 잘 출동시키는 자는 무궁무진함이 하늘과 땅의 오램과 같고, 다하지 않음이 강과 바다의 깊음과 같아서, 이미 끝났다가 다시 시작하기를 해와 달이 순환하는 것과 같이 하고, 이미 죽었다가 다시 살기를 四時가 오고 가는 것과 같이 하니, 이는 모두 奇兵을 출동함이 無窮함을 비유한 것이다.


聲不過五로되 五聲之變을 不可勝聽也요

소리는 다섯 가지에 지나지 않으나, 다섯 가지 소리의 변화를 이루 다 들을 수 없고,

聲不過宮商角徵(치)羽五者而已로되 至於五聲之變하여는 不可盡聽也라

소리는 宮․商․角․徵․羽 이 다섯 가지에 지나지 않을 뿐이나, 다섯 가지 소리의 변화함에 이르러서는 이루 다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色不過五로되 五色之變을 不可勝觀也요

색깔은 다섯 가지에 지나지 않으나, 다섯 가지 색깔의 변화를 이루 다 볼 수 없고,

色不過靑赤黃白黑五者而已로되 至於五色之變하여는 不可盡觀也라

색깔은 靑色․赤色․黃色․白色․黑色 이 다섯 가지에 지나지 않을 뿐이나, 다섯 가지 색깔의 변화함에 이르러서는 이루 다 볼 수가 없는 것이다.


味不過五로되 五味之變을 不可勝嘗也요

맛은 다섯 가지에 지나지 않으나, 다섯 가지 맛의 변화를 이루 다 맛볼 수 없고,

味不過辛酸醎苦甘五者而已로되 至於五味之變하여는 不可盡嘗也라 引此하여 以喩奇正之無窮也라

맛은 매운맛․신맛․짠맛․쓴맛․단맛 이 다섯 가지에 지나지 않을 뿐이나, 다섯 가지 맛의 변화함에 이르러서는 이루 다 맛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을 인용하여 奇兵과 正兵의 無窮함을 비유하였다.


戰勢는 不過奇正이나 奇正之變은 不可勝窮也니라

싸우는 기세는 奇兵과 正兵에 지나지 않으나, 奇兵과 正兵의 변화는 이루 다할 수가 없는 것이다.

戰陣之勢는 不過奇與正而已로되 至於奇正權變之道하여는 不可盡窮究也라

戰陣의 기세는 奇兵과 正兵에 지나지 않을 뿐이나, 奇兵과 正兵으로 臨機應變하는 방도에 이르러서는 이루 다 연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奇正相生이 如循環之無端하니 孰能窮之哉리오

奇兵과 正兵이 서로 낳음은 순환에 끝이 없는 것과 같으니, 누가 능히 이것을 다하겠는가.

或以奇而生正하고 或以正而生奇하여 奇正相生이 如環之循轉하여 無有端倪本末하니 誰能窮之哉리오

혹은 奇兵을 가지고 正兵을 낳고 혹은 正兵을 가지고 奇兵을 낳아서, 기병과 정병의 서로 낳음이 고리가 따라 도는 것과 같아서 시작과 끝, 本과 末이 없으니, 누가 능히 이것을 다하겠는가.


激水之疾이 至於漂石者는 勢也요

격동한 물의 빠름이 돌을 표류하게 함에 이르는 것은 기세요,

水性柔弱이로되 險隘之處에 激之疾流하여 至於漂轉巨石者는 其勢然也라

물의 성질이 부드럽고 약하나 험하게 막혀있는 곳에 격동시키면 빨리 흘러서 큰 돌을 표류하게 함에 이르는 것은 그 氣勢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鷙鳥之疾이 至於毁折者는 節也라

사나운 猛禽들이 빨리 공격함이 새를 훼손하고 꺾음에 이르는 것은 절도이다.

鷹鸇之鷙者 擒搏鳥雀之疾에 必至於毁折者는 其節然也라 節者는 節量其力하여 必至其處하여 使不失也라

매와 새매의 猛禽들이 새와 참새를 사로잡고 공격함의 빠름이 반드시 새를 훼손하고 꺾음에 이르는 것은 그 절도가 그러한 것이다. 節은 그 힘을 절제하고 헤아려서 반드시 그곳에 이르러 잃지 않게 하는 것이다.


故로 善戰者는 其勢險하고 其節短이니

그러므로 전투를 잘하는 자는 그 氣勢가 험하고 그 節이 짧으니,

故로 善戰者는 其勢險하니 勢險則難禦요 其節短하니 節短則易勝이니 如麴義破公孫瓚에 發伏於數十步之內1)하고 周訪敗杜曾에 奔赴於三十步之外2)하니 得勢險節短之義라

1) 麴義破公孫瓚……發伏於數十步之內:麴義([〜191)는 後漢 말기 군벌 袁紹의 막하 장수이며, 公孫瓚([〜199)은 北平 일대를 거점으로 활약한 군벌이다.

公孫瓚이 劉虞를 죽이고 幽州 땅을 차지한 다음 기고만장하여 자신의 재주와 힘을 믿고 백성들을 돌보지 않았으며, 명망과 재주가 있는 자들을 살해하거나 핍박하였다. 後漢 獻帝 興平 2년(194)에 袁紹가 10만 대군을 모아 公孫瓚을 공격하였는데, 袁紹는 부장인 麴義에게 명령하여 强弩 1천 개로 무장한 精兵 800명을 선봉으로 삼아 전면에 배치시키고 袁紹 자신은 步兵 수만 명을 거느리고 후방에 布陣하였다. 公孫瓚은 麴義의 병사가 적은 것을 보고 輕視하여 騎兵을 풀어 돌진하게 하였다. 麴義의 병사들은 모두 방패 밑에 엎드린 채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적이 수십 보의 지근거리에 이르자 일제히 일어나 함성을 지르며 곧장 공격하고 强弩를 우레처럼 쏘아대니, 公孫瓚의 步兵과 騎兵이 놀라 달아나서 대패하였다. ≪三國志 권6 董二袁劉傳 英雄記≫

2) 周訪敗杜曾 奔赴於三十步之外:周訪(260〜320)은 南北朝時代 晉나라의 장수이다. 杜曾([〜319)은 晉나라 新野 사람으로 처음에 鎭南將軍이 되었는데, 용맹이 뛰어나 永嘉 연간 後趙 石勒의 난리에 오랑캐를 무찌르고 군대를 모아 군벌이 되었다.

晉나라의 재상 王敦이 周訪으로 하여금 杜曾을 토벌하게 하였는데, 周訪은 將軍 李恆의 左翼軍과 許朝의 右翼軍을 전면으로 내보낸 다음, 자신은 中軍을 거느리고 후방을 지켰다. 杜曾이 선봉에 선 周訪의 左翼軍과 右翼軍을 공격하는 사이, 周訪은 杜曾을 두려워하는 병사들을 위하여, 꿩 사냥을 하면서 병사들을 안심시켰다. 周訪은 병사들에게 1軍이 패하면 북을 세 번 울리고 2軍이 모두 패하면 북을 여섯 번 울리라고 명령하고, 후퇴하는 부대가 있으면 가차 없이 다시 진격하여 싸울 것을 명하였다. 兩軍이 사력을 다해 이른 아침부터 申時(오후 3~5시)까지 격전을 벌였으나, 周訪의 左․右 兩翼軍이 모두 패하여 戰鼓가 여섯 번이 울렸다.

周訪은 북소리를 듣자, 정예군 800명을 선발하여 직접 술을 따라주어 사기를 끌어올리고, 자신이 지휘하여 일사분란하게 대형을 유지하게 하였다. 적이 30보의 지근거리에 이르자, 周訪이 친히 북을 울려 공격의 신호를 보내니, 將兵들이 일제히 달려 나가 혼란에 빠진 杜曾 軍을 크게 무찔러 1천여 명을 죽이고 杜曾을 참살하였다. ≪晉書 권58 周訪列傳≫

그러므로 전투를 잘하는 자는 그 氣勢가 험하니 氣勢가 험하면 막기가 어렵고, 그 節이 짧으니 節이 짧으면 이기가 쉽다.

예컨대 麴義가 公孫瓚을 격파할 적에 매복한 군대를 수십 步 안에서 출동시켰고, 周訪이 杜曾을 패퇴시킬 적에 30步 밖에서 달려갔으니, 이는 氣勢가 험하고 節이 짧은 뜻을 얻은 것이다.


勢如彍(확)弩하고 節如發機니라

기세는 쇠뇌를 가득히 당긴 것과 같이 하고, 節은 機牙를 발동하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한다.

勢如引滿之弩는 喩其險也요 節如發動之機는 喩其短也라 機者는 弩之牙也라

기세가 가득히 당긴 쇠뇌와 같음은 그 험함을 비유한 것이요, 節이 발동하는 機牙와 같음은 그 짧음을 비유한 것이다. 機는 쇠뇌의 機牙이다.


紛紛紜紜하여 鬪亂而不可亂이요

紛紛하고 어지러운 것처럼 하여 어지럽게 싸우되 어지럽힐 수가 없고,

紛紛紜紜은 亂之貌也라 使士卒戰鬪似亂이로되 而實不可亂者는 有分數也라

紛紛하고 紜紜함은 어지러운 모습이다. 병사들로 하여금 전투할 적에 겉은 어지러운 듯하나 실제는 어지럽힐 수 없는 것은 分․數가 있기 때문이다.


渾渾沌沌1) 하여 形圓而不可敗니라

1) 紛紛紜紜……渾渾沌沌:≪孫子髓≫에는 “紛紜은 어지러운 모양이고, 渾沌은 머리와 꼬리가 없는 것이다.[紛紜 亂貌 渾沌 無頭眉也]” 하였으며, 또 “紛紜은 勢이고, 渾沌은 形이다.” 하였다.

渾渾하고 沌沌하여 형체가 둥그나 패퇴시킬 수가 없다.

渾渾沌沌은 圓之象也라 布陣形圓하여 而敵不可敗者는 有形名也니 如八陣六花1)之類 隅落鉤連하고 曲折相對하여 擊尾首救하고 擊首尾救하나니 豈可敗乎아

1) 八陣六花:八陣은 여덟 가지 陣이란 말로 그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첫 번째는 ≪雜兵書≫에 보이는 ‘方陣․圓陣․牝陣․牡陣․衝陣․輪陣․浮沮陣․雁行陣’의 八陣이라는 설이고, 두 번째는 唐나라 李筌의 ≪神機制敵太白陰經≫ <陣圖>에 보이는 ‘天․地․風․雲의 四正과 龍․虎․鳥․蛇의 四奇’의 八陣이라는 설이며, 세 번째는 ≪小學紺珠≫에 보이는 諸葛亮의 ‘洞當․中黃․龍騰․鳥飛․折衝․虎翼․握機․衡’의 八陣이라는 설이다.

六花 역시 陣法으로 唐나라 李靖이 諸葛亮의 八陣法을 본받아 만든 것으로, 太宗이 六花陣은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인지를 물으니, 李靖이 대답하기를 “신이 본받은 것은 諸葛亮의 八陣法입니다. 大陣 속에 小陣이 들어있고, 大營 속에 小營이 들어있으며, 진영의 정면과 모퉁이 부분이 서로 연결되어 빈틈이 없고, 진영간의 질서가 정연합니다. 옛 八陣圖의 진법이 이러하므로, 신은 그에 따른 것입니다. 외면의 6軍은 方陣을 이루고, 내부의 1군은 圓陣을 이루어, 마치 여섯 갈래로 갈라진 꽃모양과 같다 하여, 세간에서 六花陣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李衛公問對 中≫

渾渾과 沌沌은 둥근 형상이다. 포진한 형세가 둥근데 적이 패퇴시킬 수 없는 것은 形․名이 있기 때문이니, 예컨대 八陣과 六花陣 따위의 귀퉁이를 서로 연결하고 굽은 것과 꺾인 부분이 서로 상대하여 꼬리를 치면 머리가 구원하고 머리를 치면 꼬리가 구원하니, 어찌 패퇴시킬 수 있겠는가.


亂生於治하고 怯生於勇하고 弱生於强이니

혼란(문란)함은 다스림에서 생겨야 하고, 겁냄은 용맹에서 생겨야 하고, 약함은 강함에서 생겨야 하니,

兵治而示之亂은 是亂生於治也요 兵勇而示之怯은 是怯生於勇也요 兵强而示之弱은 是弱生於强也라

군대가 다스려졌는데도 혼란한 것처럼 보임은 이는 혼란함이 다스림에서 생겨난 것이요, 군대가 용감한데도 겁내는 것처럼 보임은 이는 겁냄이 용맹에서 생겨난 것이요, 군대가 강한데도 약한 것처럼 보임은 이는 약함이 강함에서 생겨난 것이다.


治亂은 數也요 勇怯은 勢也요 强弱은 形也라

다스림과 혼란함은 數이고, 용맹과 겁냄은 기세이고, 강함과 약함은 형세이다.

行伍部曲이 各有分數는 治能示之亂也요 藏鋒畜銳하여 不肯輕出은 勇能示之怯也요 卑辭屈己하여 見利不爭은 强能示之弱也라 治而示之亂은 有分數者能然이요 勇而示之怯은 識兵勢者能然이요 强而示之弱은 知軍形者能然이니 如韓信佯棄旗鼓而示亂하여 以斬龍且(저)1)하고 孫臏令軍减竈而示怯하여 以破龐涓2)하고 匈奴藏匿壯士而示弱하여 以圍漢高3) 是也라

1) 韓信……以斬龍且(저):B.C. 205년, 漢나라의 장군 韓信이 濰水에서 楚나라 장수 龍且를 水攻으로 궤멸시킨 사건으로 자세한 내용은 82쪽 주 4) 참조.

‘대장군의 깃발과 북을 거짓으로 버리고 혼란에 빠진 것처럼 보인 것’은 韓信이 趙나라의 成安君 陳餘와 背水陣을 치고 싸울 때의 일이나, 여기서는 싸움의 초기에 강을 건너 공격하다가 패배를 가장하여 楚軍을 유인하는 과정을 묘사하기 위해 原文에 없는 말을 첨부한 것으로 보인다. ≪史記 권92 淮陰侯列傳≫

2) 孫臏……以破龐涓:B.C. 341년, 魏나라가 趙나라와 연합하여 韓나라를 공격하자, 韓나라는 齊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齊나라는 田忌를 장수로 삼고 孫臏을 軍師로 삼아 韓나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이 싸움에서 孫臏은 아궁이 수를 줄이는 계책을 써서 龐涓으로 하여금 방심하게 하여 전쟁에 승리하였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80쪽 주 2) 참조.

3) 匈奴……以圍漢高:B.C. 200년, 韓王 信이 匈奴와 내통하여 漢나라를 치려 한다는 보고를 받은 漢 高祖는 匈奴에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어 그 실정을 탐지하고자 하였다. 匈奴는 그들의 건장한 병사들과 살진 牛馬를 숨기고 노약자와 여윈 가축들만 보이게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匈奴에 갔다 온 자들이 모두 제대로 실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흉노를 경시하여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다고 보고하였다.

高祖가 다시 劉敬을 匈奴에 사신으로 보내어 실정을 탐지하도록 하였는데, 劉敬은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신이 匈奴에 도착하니, 여위고 지친 노약자만 눈에 띄었습니다. 이는 틀림없이 저들이 일부러 약한 체하여 우리를 방심시켜 놓고 奇兵으로 승리를 취하려는 계략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匈奴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여깁니다.”라고 하였다.

劉敬의 보고가 과장되었다고 여긴 高祖는 劉敬을 廣武의 감옥에 가두고서 친히 대군을 거느리고 匈奴를 정벌하였는데, 平城에 이르러 匈奴의 기습을 받고 본진과 떨어진 채 白登山에서 포위되었다. 高祖는 冒頓單于(묵특선우)의 왕후인 閼氏(연지)에게 후한 뇌물을 주고 겨우 포위망을 빠져나와 匈奴와 화친하였다. ≪史記 권99 劉敬列傳≫

行伍와 部曲이 각각 分數가 있음은 잘 다스려졌으면서 혼란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요, 칼날을 감추고 銳氣를 쌓아서 가볍게 출동하지 않음은 용맹하면서 겁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요, 말을 낮추고 자기 몸을 굽혀서 이익을 보고도 다투지 않음은 강하면서도 약함을 보이는 것이다.

다스려졌으면서도 혼란함을 보임은 分數가 있는 자가 이렇게 할 수 있고, 용맹하면서도 겁내는 것처럼 보임은 兵勢를 아는 자가 이렇게 할 수 있고, 강하면서도 약함을 보임은 軍形을 아는 자가 이렇게 할 수 있다.

예컨대 韓信이 거짓으로 대장군의 깃발과 북을 버려 어지러운 것처럼 보여서, 이로써 龍且를 목 베었고, 孫臏이 군대로 하여금 아궁이 수를 줄여 겁내는 것처럼 보여서 龐涓을 격파하였고, 匈奴가 건장한 병사들을 감춰두어 약함을 보여서 漢 高祖를 포위한 것이 이것이다.


故로 善動敵者는 形之면 敵必從之하고

그러므로 적을 잘 움직이게 하는 자는 나타나면 적이 반드시 따라오고,

故로 善能動敵者는 示之以形이면 敵必從之하나니 或强而示以形之弱은 孫臏减竈 是也요 或弱而示以形之强은 虞詡(후)增竈1) 是也라

1) 或强而示以形之弱……虞詡(후)增竈:虞詡는 後漢 安帝, 順帝 때의 名將이다. 虞詡가 武都太守 시절, 羌族의 大軍이 변경을 침범하였는데, 현저한 병력의 열세로 위기에 봉착하였다. 이때 虞詡는 구원병이 온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병사들로 하여금 아궁이의 수를 매일 갑절로 늘리게 하여 구원병이 계속 오는 것처럼 위장하니, 羌族들은 감히 공격하지 못하였다.

혹자가 묻기를 “옛날 孫臏은 龐涓과 싸울 적에 아궁이 수를 날마다 줄였는데 그대는 그 수를 날마다 늘렸으며, 兵法에는 ‘하루에 30리를 행군하여 비상사태에 대비한다.’고 하였는데 지금 그대는 하루에 200리를 행군하니, 이는 어째서인가[” 하니, 虞詡는 대답하기를 “빠르게 행군한 것은 오랑캐들이 우리의 위치를 헤아리지 못하여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병법을 지켜 우리가 천천히 행군하였으면 저들의 대군에게 따라잡혀 포위되었을 것이다. 아궁이의 숫자를 속이되 孫臏은 약한 것처럼 보이고자 하였고, 나는 강한 것처럼 보이고자 하였으니, 이는 그 형세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後漢書 권88 虞詡傳≫

그러므로 적을 잘 움직이게 하는 자는 형세를 보여주면 적이 반드시 따라오니, 혹 강하면서도 약한 형세를 보임은 孫臏이 아궁이 수를 줄인 것이 이것이요, 혹 약하면서도 강한 형세를 보임은 虞詡가 아궁이 수를 더 늘린 것이 이것이다.


予之면 敵必取之하나니

주면 적이 반드시 취하나니,

以小利予敵이면 敵必來取之하나니 如李牧以小利誘胡人而破之1) 是也라

1) 李牧以小利誘胡人而破之:李牧([〜B.C. 236)이 작은 이익을 가지고 오랑캐 사람들을 유인하여 격파한 계략은 87쪽 주 1) 참조.

작은 이익을 적에게 주면 적이 반드시 와서 취하니, 예컨대 李牧이 작은 이익을 가지고 오랑캐 사람들을 유인하여 격파한 것이 이것이다.


以利動之하고 以本待之니라

이익을 가지고 움직이고 근본을 가지고 대비한다.

以利動敵而誘之來하고 以本待敵而使之敗니 本은 謂吾之步騎 或正或奇하여 務在必勝1)이라

1) 本謂吾之步騎……務在必勝:≪孫子髓≫에는 원문의 ‘以本待之’를 治․勇․强의 근본을 가지고 대기하는 것으로 보고, “舊註에 本을 正兵이라 하였으니, 형체를 속여 敵을 오게 하면서 正兵으로 대기하는 자가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비판하였다.

이익을 가지고 적을 유인하여 오게 하고, 근본을 가지고 적을 대비하여 패하게 하는 것이니, 근본은 나의 步兵과 騎兵이 혹 正兵이 되고 혹 奇兵이 되어서, 힘씀이 必勝함에 있음을 이른다.


故로 善戰者는 求之於勢하고 不責之於人이라 故로 能擇人而任勢하나니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자는 형세에서 찾고 사람에게서 바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능히 사람을 가려 쓰고 기세에 맡기는 것이다.

故로 善戰者는 求之於兵勢之必勝하고 不責成於不才之人이라 故로 能擇人之才者하여 而任之以勢1)니 曹操使張遼, 李典, 樂進으로 守合淝(비)할새 敎之曰 若孫權至어든 張遼, 李典은 出戰하고 樂進은 守하라 權이 領兵十萬하여 圍合淝한대 典與遼로 將數千人同出하여 果大敗孫權하니 吳人奪氣어늘 還修守備하니 衆心乃安이라 權攻城不拔而退2)하니 此는 擇人任勢之道也라

1) 求之於兵勢之必勝……而任之以勢:≪孫子髓≫에는 “재주가 없는 사람에게 중대한 일을 이루기를 바라면 또한 그 임무를 감당해내지 못하므로 바라지 않는 것이다.[不才之人 責成重事 不能勝任 故不責]”라고 한 蕭吉의 말을 비판하고, “勢에서 구하면 병사들을 똑같이 용감하게 만드니, 어찌 사람마다 책할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또한 달리 공교로운 방법이 없고 다만 사람의 所長을 가려서 그 자연의 勢에 맡길 뿐이다.[求之於勢 則齊勇若一 安得人人而責之哉 然亦無他謬巧也 但能擇人所長 任其自然之勢而已]” 하였다.

2) 曹操使張遼……權攻城不拔而退:赤壁大戰에서 대패한 曹操가 許昌으로 돌아가면서 張遼․樂進․李典 등에게 7천여 명의 병력을 주어 合淝를 방어하게 하였는데, 曹操는 떠날 적에 만약 孫權의 군대가 오거든 뜯어보라며 편지 한 통을 남겼다. 孫權이 10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와서 合淝를 포위하자 曹操의 편지를 개봉하였는데, 여기에 ‘張遼와 李典은 나가 싸우고 樂進은 수비하라.’고 쓰여 있었다.

이에 용기백배한 張遼가 李典과 함께 결사대를 뽑아 함께 적진으로 뛰어들어 수십 명을 죽이고 두 장수를 목 베고 별안간에 孫權의 陣前에 이르렀다. 불의에 기습을 받은 孫權과 그의 부하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높은 언덕에 올라가 가까스로 방어하였다. 張遼는 孫權을 겁쟁이라고 꾸짖고, 군대를 거느리고 성으로 돌아가니, 모든 장병들이 사기가 충천하여 한마음으로 城을 지켜, 孫權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孫權은 合淝城을 공격한 지 10여 일이 되었으나 성을 함락할 수 없자, 마침내 병력을 이끌고 철수하였다. ≪三國志 권17 張遼傳≫

그러므로 전쟁을 잘하는 자는 兵勢의 필승에서 찾고, 재주 없는 사람에게서 성공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재주 있는 사람을 가려서 기세를 맡기는 것이다.

曹操가 張遼, 李典, 樂進으로 하여금 合淝를 지키게 할 적에 당부하기를 “만약 孫權의 군대가 오거든 張遼와 李典은 나가 싸우고 樂進은 수비하라.” 하였다. 孫權이 십만 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合淝를 포위하자, 李典은 張遼와 함께 수천 명을 거느리고 함께 출전하여 과연 孫權을 대패시켰다. 이에 吳나라 병사의 士氣가 저하되자 張遼는 돌아와서 수비를 닦으니, 병사들의 마음이 비로소 안정되었다. 孫權이 성을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물러갔으니, 이는 사람을 가려 쓰고 기세에 맡긴 방도이다.


任勢者는 其戰人也 如轉木石이니 木石之性은 安則靜하고 危則動하며 方則止하고 圓則行하나니라

氣勢에 맡기는 자는 병사들을 싸우게 함이 나무와 돌을 굴리는 것과 같으니, 나무와 돌의 성질은 편안하면 고요하고 위태로우면 움직이며 네모나면 그치고 둥글면 굴러간다.

任勢者는 其與人戰也에 如轉木石同하니 木石之性은 置之安地則靜하고 置之危地則動하며 方正則止하고 圓斜則行하나니 皆自然之勢也라 故로 兵士甚陷則懼하고 無所往則固하고 入深則拘하고 不得已則鬪하나니 亦自然之勢耳라

氣勢에 맡기는 자는 적과 싸울 적에 나무와 돌을 굴리는 것과 같다. 나무와 돌의 성질은 편안한 자리에 놓으면 고요하고 위태로운 자리에 놓으면 움직이며, 네모나면 멈추고 둥글거나 기울면 굴러가니, 이는 모두 자연의 기세이다. 그러므로 병사들은 매우 위태로운 경지에 빠지면 두려워하고 갈 곳이 없으면 견고해지고 깊은 곳에 들어가면 구속되고 부득이하면 싸우는 것이니, 또한 자연의 기세이다.


故로 善戰人之勢 如轉圓石於千仞之山者는 勢也니라

그러므로 적과 잘 싸우는 사람의 형세가 둥근 돌을 천 길의 산 위에서 굴리는 것과 같은 것은 기세 때문이다.

轉圓石於千仞之山하여 而不可止遏者는 由勢使之也요 兵在險地而不可制禦者는 亦勢使之也라 昔에 樂毅藉濟西一戰하여 能倂强齊1)하니 蓋兵威已成에 勢如破竹이라 數節之後에 迎刃自解하여 不可止也라

1) 樂毅藉濟西一戰 能倂强齊:당시 齊나라가 강성하여 列國을 압박하자, 燕 昭王을 중심으로 趙․楚․韓․魏․燕의 5국이 서로 연합하였는데, B.C. 284년, 樂毅를 上將軍으로 삼아 연합군을 총 지휘하여 齊나라를 공격하도록 하였다. 이에 樂毅는 연합군을 거느리고 齊나라에 쳐들어가서 濟西의 싸움에서 湣王이 지휘하는 齊軍을 대파하였다. 趙․楚․韓․魏의 군대가 본국으로 귀환하였으나, 樂毅는 破竹의 氣勢로 齊나라 경내로 진군을 거듭하여, 齊나라의 70여 城邑을 항복받아 모두 燕나라의 郡縣으로 편입시켰다. ≪史記 권80 樂毅列傳≫

둥근 돌을 천 길의 산 위에서 굴려서 멈추게 할 수 없는 것은 기세가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요, 군대가 험한 곳에 있으면서 제재할 수 없는 것은 또한 기세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옛날에 樂毅가 濟西의 한 전투에 의하여 강한 齊나라를 겸병하였으니, 군대의 위엄이 이미 이루어짐에 기세가 대나무를 쪼개는 것과 같았다. 그리하여 몇 마디를 쪼갠 뒤에는 칼날을 맞으면 저절로 풀리는 것과 같아서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