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九地 第十一

제11편 아홉 가지 地勢


九地者는 謂地之勢有九也라 上篇에 言地形은 乃地理自然之形也요 此篇에 言九地는 因兵所至之地하여 而勢有九等之別也라 上篇은 蓋言地形之常하고 此篇은 蓋言地勢之變이라 故로 篇內에 有云九地之變과 屈伸之利하니 此는 地形九地所以分而爲二也니라

九地란 땅의 형세가 아홉 가지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위 편에서 말한 지형은 바로 지리자연의 형세이고, 이 편에서 말한 九地는 군대가 이르는 곳에 따라 형세가 아홉 등급의 구별이 있는 것이다. 위 편은 지형의 일정함을 말하였고, 이 편은 지형의 변함을 말하였다. 그러므로 편 안에 九地의 변화와 屈伸의 이로움을 말한 것이 있으니, 이는 ‘地形’과 ‘九地’가 나뉘어 두 편이 된 이유이다.


孫子曰 用兵之法은 有散地하고 有輕地하고 有爭地하고 有交地하고 有衢(구)地하고 有重地하고 有圮(비)地하고 有圍地하고 有死地하니라

孫子가 말하였다.

用兵하는 법은 散地가 있고 輕地가 있고 爭地가 있고 交地가 있고 衢地가 있고 重地가 있고 圮地가 있고 圍地가 있고 死地가 있다.

此는 九地之目也라

이는 아홉 가지 地形의 조목이다.


諸侯自戰其地者 爲散地요

諸侯가 자기 지역에서 스스로 싸우는 것을 散地라 하고,

諸侯自戰於境內之地者를 名之爲散地니 散地者는 以其士卒有內顧之心而易散也라 如鄭人軍於郊에 恃近其城하여 莫有鬪志하여 爲楚所敗1) 是也라

1) 鄭人軍於郊……爲楚所敗:明末淸初 때 학자 朱鶴齡(1606~1683)이 지은 ≪讀左日鈔≫에 의하면 “鄭人은 ‘鄖人’의 誤記이다.” 하였다.

≪春秋左氏傳≫ 桓公 11년에 “鄖나라 사람들이 蒲騷에 주둔하고 隋ㆍ絞ㆍ州ㆍ蓼 네 邑과 연합하여 楚軍을 공격하려 하니, 莫敖로 있던 屈瑕가 이를 염려하자, 鬪廉이 말하기를 ‘鄖나라 사람들은 자기 나라 근교에 주둔하였으므로 반드시 경계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날마다 네 邑의 군대가 오기를 바랄 것이니, 君께서는 郊郢에 주둔해서 네 邑의 군대를 막으십시오. 저는 정예부대를 거느리고 가서 밤에 鄖나라를 공격하겠습니다. 鄖나라는 네 읍의 군대를 기다리는 마음이 있고 또 그 城이 가까이 있음을 믿고서 싸우려는 뜻이 없을 것이니, 만약 鄖나라의 군대를 패배시킨다면 네 읍의 군대도 반드시 뿔뿔이 흩어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계책을 따라 鄖나라 군대를 蒲騷에서 격파하였다”라고 보인다.

諸侯가 자기 경내의 지역에서 스스로 싸우는 것을 이름하여 散地라 하니, 산지라는 것은 병사들이 안을 돌아보는 마음이 있어서 흩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鄭나라 사람들이 교외에 군대를 주둔했을 적에, 성이 가까운 것을 믿고서 싸울 마음이 없어서 楚나라에게 패한 것이 이것이다.


入人之地不深者 爲輕地요

남(적)의 지역에 들어가되 깊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輕地라 하고,

去國越境하여 入其地不深者를 名之爲輕地니 輕地者는 言士卒思還하여 難進而輕於退也라

國都를 떠나 국경을 넘어가서 적의 지역에 들어가되 깊이 들어가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輕地라 하니, 輕地라는 것은 병사들이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 前進하기를 어려워하고 後退하기를 쉽게 함을 말한 것이다.


我得亦利하고 彼得亦利者 爲爭地요

우리가 얻어도 이롭고 적이 얻어도 이로운 것을 爭地라 하고,

險固之處는 我得之亦便利하고 彼得之亦便利하여 皆可以少擊衆하고 以弱擊强을 名之爲爭地니 爭地者는 務在必爭也라 如成臯之險을 唐太宗以三千人守之하여 坐困建德十萬之衆1)이 是也라

1) 成臯之險……坐困建德十萬之衆:成臯는 河南省에 있는 地名으로 지형이 험고하여 전략적으로 요충지였다. 唐 太宗이 隋나라 말기 鄭王 王世充을 토벌할 적에 夏王 竇建德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합세하여 저항하니, 諸將들은 모두 “잠시 退軍하여 적의 형세를 관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였다.

그러나 薛收는 건의하기를 “지금 군대를 나누어 진영을 굳게 지키고 王世充이 와서 도전하더라도 삼가 출병하지 말아야 합니다. 秦王(唐 太宗)께서 친히 용맹하고 정예로운 병사들을 거느리고 成臯의 험준한 지역을 선점하여 병사들을 훈련시키면서 저들의 피폐한 병사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당당한 기세로 맞아 싸우면 한 번 싸움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으니, 竇建德은 즉시 격파되고 王世充은 저절로 무너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唐 太宗이 이를 받아들여 마침내 竇建德을 사로잡았다. ≪舊唐書 권73 薛收列傳≫

험하고 견고한 곳은 우리가 얻어도 편리하고 적이 얻어도 또한 편리하여, 적은 병력으로 많은 병력을 공격하고 약한 병력으로 강한 병력을 공격할 수 있는 곳을 이름하여 爭地라 하니, 爭地라는 것은 반드시 다투어야 할 처지에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成臯의 험함을 唐 太宗이 3천 명으로 지키게 해서 竇建德의 10만 대군을 곤궁하게 만든 것이 이것이다.

我可以往이요 彼可以來者 爲交地요

우리가 갈 수 있고 적이 올 수 있는 것을 交地라 하고,

平易之地에 我亦可以往이요 彼亦可以來者를 名之爲交地니 交地者는 地有數道하여 往來通達而交錯者也라

평이한 땅으로 우리가 갈 수 있고 적이 또한 올 수 있는 것을 이름하여 交地라 하니, 交地라는 것은 땅에 몇 길이 있어서 왕래가 통달하여 서로 교차되는 것이다.


諸侯之地三屬에 先至而得天下之衆者 爲衢地요

諸侯의 땅이 三面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먼저 이르면 천하의 무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을 衢地라 하고,

諸侯之地 三面連屬隣國하여 若先至其衝하여 據其形勢하면 而得天下之衆者를 名之爲衢地니 衢地者는 四面通達이 如衢路也라

제후의 땅이 삼면이 이웃 나라와 연접해 있어서 만약 먼저 요충지에 이르러 그 형세를 점거하면 천하의 무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을 이름하여 衢地라 하니, 衢地라는 것은 사면으로 통달함이 길거리와 같은 것이다.


入人之地深하여 背城邑多者 爲重地요

남의 지역에 깊이 들어가서 적의 城邑을 많이 등지고 있는 것을 重地라 하고,

入敵人之境已深하고 背彼之城邑已多를 名之爲重地니 重地者는 士卒心專하여 無歸志하여 重於退還也라

적의 국경에 들어감이 이미 깊고 적의 성읍을 등진 것이 이미 많음을 이름하여 重地라 하니, 重地라는 것은 병사들의 마음이 전일하여 돌아갈 마음이 없어서 후퇴하고 돌아가는 것을 어렵게 여기는 것이다.


行山林險阻沮澤 凡難行之道者 爲圮(비)地요

山林으로 험하고 막힌 곳과 저습한 늪 지역으로서 모든 행군하기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을 圮地라 하고,

山林險阻之地와 沮澤卑下之處에 凡有難行之道路를 名之爲圮地니 圮地者는 毁壞而不可留止也라

산림으로 험하고 막힌 지역과 늪과 못이어서 저습한 곳으로서 모든 행군하기 어려운 도로가 있는 것을 圮地라 이름하니, 圮地란 무너져서 오랫동안 머물 수 없는 것이다.


所由入者隘하고 所從歸者迂하여 彼寡로 可以擊吾之衆者 爲圍地요

들어가는 길이 좁고 따라 돌아오는 길이 우회하여 적의 적은 병력으로 우리의 많은 병력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을 圍地라 하고,

所由而入者 其形狹隘하고 所從而歸者 其路迂回하여 彼寡로 可擊吾之衆者를 名之曰圍地니 圍地者는 前狹後險하여 進退艱難이 如被圍者也라

경유하여 들어가는 곳은 지형이 협소하고 따라 돌아오는 곳은 길이 우회하여, 적의 적은 병력으로 우리의 많은 병력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을 이름하여 圍地라 하니, 圍地라는 것은 앞이 좁고 뒤가 험하여 나아가고 물러감이 어려워 포위를 당한 것과 같은 것이다.


疾戰則存하고 不疾戰則亡者 爲死地라

급히 싸우면 生存하고 급히 싸우지 않으면 망하는 것을 死地라 한다.

山川險遠하여 進退不能하며 糧絶於中하고 敵臨於外하여 疾戰則可以生存이요 不疾戰則必至於危亡者를 名之曰死地니 死地者는 謂陷於死絶之(心)[地]1)니 當倂氣一力而幸其生也라

1) (心)[地]:저본의 ‘心’은 明本에 의거하여 ‘地’로 바로잡았다.

山川이 험하고 멀어서 마음대로 전진하고 후퇴할 수가 없으며 식량이 중간에서 끊기고 적이 밖에서 굽어보고 있어, 급히 싸우면 생존할 수 있고 급히 싸우지 않으면 반드시 위태롭고 멸망함에 이르는 것을 이름하여 死地라 한다. 死地라는 것은 죽을 땅에 빠짐을 이르니, 마땅히 기운을 합하고 힘을 합쳐서 살기를 바라야 한다.


是故로 散地則無戰이요

이 때문에 散地에서는 싸우지 말아야 하고,

是故로 近郊之地는 士卒懷土하여 其心易散이면 則無令與戰이니 若敵人深入하여 專志輕鬪어든 吾當集人積穀하고 保城守險하여 使輕兵絶其糧道니 彼挑戰不得하고 轉輸不至하여 野無所掠하여 三軍困餒어든 出兵擊之면 可以取勝이라

이 때문에 近郊의 땅은 병사들이 자기 고향을 그리워하여 마음이 흩어지기 쉬우면 병사들로 하여금 싸우게 할 수 없으니, 만약 적이 깊이 쳐들어와서 전일한 마음으로 가볍게 싸우거든 우리는 마땅히 병력을 모으고 곡식을 저축하며 城을 보수하고 험한 곳을 지키면서, 輕武裝한 군대로 하여금 적의 군량수송로를 끊어야 한다. 그리하여 저들이 도전하여도 싸울 수가 없고 군량 수송이 계속되지 못하여, 들에 노략질할 것이 없어서 三軍이 곤궁하고 굶주리거든, 군대를 출동하여 공격하면 승리할 수 있다.


輕地則無止요

輕地에서는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하고,

始入敵境하여 未背險要하고 士卒思還하여 難進易退하면 務在必入호되 無得留止하고 選其精騎하여 密其所伏이라가 敵人若來면 則出奇擊之하고 未至則速去之니라

처음 적의 국경에 들어가서 험한 요새를 등지지 못하고 병사들이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 전진하기를 어렵게 여기고 후퇴하기를 쉽게 여기면, 되도록 기필코 들어가되 머물러 있지 말고 정예로운 騎兵을 선발하여 은밀히 매복하였다가, 적들이 만약 오거든 奇兵을 출동시켜 공격하고 적들이 오지 않거든 신속히 떠나야 한다.


爭地則無攻이요

爭地에서는 오랫동안 적을 공격하지 말아야 하고,

險固要害는 必爭之地니 無得攻城延緩하고 當後發先至而據之니 如趙奢速發萬人하여 據北山한대 秦師後至하여 爭山不得上1)이 是也라 昔漢景帝時에 吳楚反할새 或說吳王曰 吳多步兵하니 步兵은 利險阻하고 漢多車騎하니 車騎는 利平地라 願大王은 所過城邑을 勿攻하고 直去하여 疾西據洛陽武庫하여 食敖倉粟하고 阻山河之險하여 以令諸侯면 雖無入關이나 天下固已定矣리이다 大王徐行하여 留下城邑이라가 漢軍車騎至하여 馳入梁楚之郊면 事敗矣리이다호되 吳王不聽이라가 果敗2)하니 此는 不知爭地而務攻之失也라

1) 趙奢速發萬人……爭山不得上:秦나라가 韓나라의 閼與를 포위 공격하자, 趙나라의 장군 趙奢가 구원병을 이끌고 출동하였는데, 趙奢가 먼저 北山을 점거하여 秦軍을 대파하고 閼與를 구원하였다. 자세한 과정과 戰術은 83쪽 주 1) 참조.

2) 漢景帝時……果敗:이 내용은 ≪史記≫ 권106 <吳王濞列傳>에 그대로 보인다.

地形이 험고한 요해처는 반드시 다투어야 할 지역이니, 성을 공격하여 시일을 지체하지 말고 마땅히 뒤늦게 출발하고 먼저 도착하여 점거하여야 하니, 예컨대 趙奢가 신속히 1만의 병력을 동원하여 北山을 점령하자, 秦나라 군대가 뒤늦게 도착하여 산을 다투었으나 올라가지 못한 것이 이것이다.

옛날 漢 景帝 때에 吳나라와 楚나라가 배반하였는데, 혹자가 吳王에게 설득하기를 “吳나라는 步兵이 많으니 보병은 험하고 막힌 곳이 유리하고, 漢나라는 전차와 騎兵이 많으니 전차와 기병은 평지가 이롭습니다. 원컨대 대왕은 통과하는 城邑을 공격하지 말고 곧바로 가서 급히 서쪽으로 洛陽의 武庫를 점거하여 敖倉에 있는 곡식을 먹고 山河의 험한 곳을 막고서 제후들에게 명령하소서. 이렇게 하면 비록 關中(長安)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천하가 진실로 이미 평정될 것입니다. 만일 대왕이 천천히 행군하여 머물러 성읍을 함락시키려 하다가 漢나라의 전차와 기병이 도착하여 급히 梁나라와 楚나라의 교외로 들어오면 일이 실패할 것입니다.” 하였으나, 吳王이 그 말을 듣지 않다가 과연 패하였으니, 이는 爭地를 알지 못하고 공격에 힘쓴 잘못이다.


交地則無絶이요

交地에서는 길을 끊지 말아야 하고,

往來交通之地는 不可阻絶其路요 當設奇伏하여 示以不能하고 誘之半至하여 襲而擊之 可也라 或曰 使部伍聯屬하여 不可斷絶이니 恐敵人乘我也라하니라

왕래하여 交通할 수 있는 지역은 그 길을 가로막아 끊지 말고 마땅히 奇兵을 매복시켜 무능한 것처럼 적에게 보이고, 적을 유인하여 반쯤 오게 해서 습격하는 것이 좋다.

혹자는 말하기를 “部伍로 하여금 연속되어서 단절되지 않게 하는 것이니, 적이 우리의 허점을 틈탈까 두려워해서이다.”라고 하였다.


衢地則合交요

衢地에서는 외국과 연합하여 사귀어야 하고,

四通之地는 當先遣使하여 以厚賂로 約和旁國然後에 簡兵練卒하여 阻便利而處면 則我有外助하고 彼失其援하리니 左右掎(기)角1)이면 必然取勝이라

1) 左右掎(기)角:‘掎角’은 犄角으로도 표기하는바, 사슴을 잡을 때 앞쪽에선 뿔을 잡고 뒤쪽에선 다리를 붙잡는 형세로, 전쟁에 앞뒤에서 협공함을 이른다. ≪春秋左氏傳≫ 襄公 14년에 “비유하면 사슴을 잡는데 晉나라 사람은 뿔을 잡고 諸戎은 다리를 잡고서 晉나라 사람과 함께 쓰러뜨리는 것과 같다.”라고 보인다.

사방이 통하는 지역은 마땅히 먼저 사신을 보내어서, 많은 재물을 가지고 이웃 나라와 화친을 약속한 뒤에 병사들을 선발하여 편리한 곳을 막고 주둔하면, 우리는 밖의 원조가 있고 적은 원조를 잃을 것이니, 좌우에서 掎角으로 싸우면 반드시 승리를 취할 것이다.


重地則掠이요

重地에서는 노략질하여야 하고,

深居重地하여 進未有利하고 退復不得이어든 當掠取糧食하고 深壘固軍하여 示敵持久하고 審察虛實하여 出奇取勝이니라

重地에 깊이 주둔하여 전진하여도 이로움이 있지 못하고 후퇴하여도 다시 얻을 것이 없으면 마땅히 적의 양식을 노략질하여 취하고, 보루를 높이 쌓고 군대를 굳게 주둔하여 적에게 持久戰할 것을 보이고, 적의 虛實을 자세히 살펴서 奇兵을 출동시켜 승리하여야 한다.


圮地則行이요

圮地에서는 빨리 떠나가야 하고,

圮壞之地에 艱阻難處어든 宜速行而去니 若卒遇敵人이어든 便當據險守要하고 簡選精兵하여 或分而左하고 或分而右하여 掩其空虛하여 乘其不備라야 乃能勝之니라

무너지는 지역에서 험하고 막혀 주둔하기가 어렵거든 마땅히 속히 떠나야 하니, 만약 갑자기 적을 만나면 마땅히 험한 곳을 점거하고 요해처를 지키고 정예병을 선발하여, 혹은 나누어 왼쪽에 두고 혹은 나누어 오른쪽에 두어서, 적의 허술한 곳을 기습하여 적이 대비하지 않은 곳을 틈타야 비로소 승리할 수 있다.


圍地則謀요

圍地에서는 도모하여야 하고,

前有强敵하고 後有險阻하여 欲進不能이요 欲退不敢이 是爲圍地니 難以力勝이요 易以謀取라 故로 塞其闕하여 示無所往하고 佯爲寡弱之形이면 敵備我必輕하리니 同心齊力하여 奮勇而前하여 分兵據險하여 鼓譟而出이면 乃能取勝이라

앞에는 강한 적이 있고 뒤에는 험하고 막힌 곳이 있어서 전진하고자 하여도 전진할 수 없고 후퇴하고자 하여도 감히 후퇴할 수 없는 것을 圍地라 하니, 이러한 지역에서는 힘으로써 승리하기는 어렵고 智謀로써 쉽게 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적이 포위망을 풀어준 곳을 막아서 병사들에게 갈 곳이 없음을 보여주고, 적에게 병력이 적고 약한 모습을 거짓으로 보여주면, 적이 우리를 대함이 반드시 경솔할 것이니, 병사들과 마음을 함께하고 힘을 합하여 용맹을 떨쳐 전진해서 병력을 나누어 험한 요해처를 점거하여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출동하면, 비로소 승리할 수 있다.


死地則戰이니라

死地에서는 결사적으로 싸워야 한다.

陷之死地어든 當深溝高壘하여 安靜勿動하고 號令三軍하여 示不得已하고 殺牛饗士然後에 塞井夷竈하고 幷氣一力하여 以殊死戰이니 此所謂失道而求生者也라 故로 曰 困而不謀者는 窮하고 窮而不戰者는 亡이라하니라

死地에 빠졌으면 마땅히 해자를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고서 안정하여 출동하지 말고, 三軍에게 호령해서 부득이함을 보여주며, 소를 잡아 병사들에게 燕饗을 베푼 뒤에 우물을 메꾸고 부엌을 부수고서 기운을 합하고 힘을 함께하여 결사적으로 싸워야 하니, 이는 이른바 ‘살 길을 잃었으면서 살 길을 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병법에 이르기를 “곤궁하면서 도모하지 않는 자는 끝내 곤궁하고, 곤궁하면서 싸우지 않는 자는 끝내 망한다.”라고 한 것이다.


古之所謂善用兵者1)는 能使敵人으로 前後不相及하고 衆寡不相恃하고 貴賤不相救하고 上下不相收하고 卒離而不集하고 兵合而不齊하니라

1) 古之所謂善用兵者:≪孫子髓≫에 “이 節이 윗장을 잇지 않고 특별히 따로 의논을 세운 것은 어째서인가[ 이는 아랫글에 곧바로 死地와 잇지 않고, 여러 가지 주인이 되고 客이 되는 수많은 句語를 가지고 차례로 말하였기 때문에 다만 ‘善用兵’을 가지고 단서를 바꾼 것이다.” 하였다.

옛날에 이른바 ‘用兵을 잘하는 사람’이란 적으로 하여금 앞뒤가 서로 미치지 못하게 하고, 병력이 많은 부대와 적은 부대가 서로 믿지 못하게 하고,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이 서로 구원하지 못하게 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수습하지 못하게 하고, 병사들이 이산하여 모이지 못하게 하고, 병사들이 모여도 정돈되지 못하게 하였다.

古之所謂善能用兵者는 衝敵人之中하여 使前與後로 不得相及也하고 分敵人之勢하여 使衆與寡로 不得相恃也1)하며 出其不意하고 掩其無備하여 使貴與賤으로 不得相救援하고 上與下로 不得相收斂하여 倉皇散亂하여 不知所禦하여 將吏士卒이 不能相赴하여 卒已散而不能復集하고 兵雖合而不能復齊니 如楚薄晉兵하여 車馳卒奔이어늘 荀林父(보)無備라가 不知所措하여 中軍, 下軍은 爭舟濟河하고 上軍固守하여 不能相救하고 士卒散亂하여 終夜有聲2)이 是也라

1) 分敵人之勢……不得相恃也:≪孫子髓≫에는 본문의 ‘衆寡不相恃’를 “모이면 흩어질 수 없고 흩어지면 모일 수 없는 것이다.” 하고, 이는 다만 “분산과 합침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只當以分合言]” 하였다.

2) 楚薄晉兵……終夜有聲:B.C. 597년 6월, 楚나라 군대와 晉나라 군대가 격전을 벌였는데, 楚軍이 晉軍을 압박하여 戰車와 병사들이 달려오자, 晉나라 장군 荀林父가 대비하지 않고 있다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여 中軍과 下軍은 배를 다투어 黃河를 건너가고 上軍은 굳게 지켜 서로 구원하지 못하였다. 황혼 무렵에 이르러 승리한 楚나라 군대가 邲邑에 주둔하였다. 晉나라의 패잔병들은 혼란에 빠져 軍容을 이루지 못하고 밤에 황하를 건너는데, 밤새도록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春秋左氏傳 宣公 12년≫

옛날에 이른바 用兵을 잘하는 사람이란 적군의 가운데를 충돌해서 앞과 뒤로 하여금 서로 미치지 못하게 하고, 적의 형세를 나누어서 병력이 많은 부대와 적은 부대로 하여금 서로 믿지 못하게 하며, 적이 예상하지 않은 곳으로 출동하고 적의 대비가 없는 곳을 습격하여 귀한 자와 천한 자로 하여금 서로 구원하지 못하게 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으로 하여금 서로 수습하지 못하게 해서, 경황이 없는 가운데 흩어지고 혼란하여 막을 바를 알지 못하여, 장수와 관리와 병사들이 서로 달려가지 못해서 병사들이 이미 흩어져 다시 모이지 못하고, 병사들이 모이더라도 다시 정돈되지 못하게 하였다.

예컨대 楚나라가 晉나라 군대를 압박하여 戰車가 달려가고 병사들이 달려가자, 晉나라 장군 荀林父가 대비함이 없다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여 中軍과 下軍은 배를 다투어 황하를 건너가고 上軍은 굳게 지켜 서로 구원하지 못하였으며, 병사들이 흩어지고 혼란하여 밤새도록 떠드는 소리가 있었던 것이 이것이다.

○ 杜牧曰 多設變詐하여 以亂敵人하여 或衝前掩後하고 或驚東擊西하며 或立僞形하고 或張奇勢하여 我則無形以合戰하고 彼則必備而衆分하여 使其怖懾離散하여 上下驚撓하여 不能和合하고 不得聚集이니 此善用兵者也라

○ 杜牧이 말하였다.

“속임수를 많이 설치하여 적을 혼란하게 만들어서 혹은 적의 앞쪽을 충돌하고 뒤를 습격하며, 혹은 동쪽을 놀라게 하고 서쪽을 공격하며, 혹은 거짓으로 인형을 세워놓고 혹은 기이한 형세를 펼쳐서, 우리는 형체가 없이 적과 會戰하고 적은 반드시 대비하여 병력이 분산되게 만들어서, 적들로 하여금 두려워하고 이산되게 하여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놀라고 소란해서 和合하지 못하고 모이지 못하게 하여야 하니, 이는 用兵을 잘하는 자이다.”


合於利而動하고 不合於利而止니라

利益에 부합하면 출동하고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멈추어야 한다.

敵雖驚撓나 亦觀其合於利면 則動以應敵하고 不合於利면 則止而不從也라

적이 비록 놀라고 소요하나 또한 관찰하여 이익에 부합하면 출동하여 적과 대응하고,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중지하고 따르지 말아야 한다.


敢問 敵衆整而將來면 待之若何오 曰 先奪其所愛則聽矣리라

감히 묻겠습니다. “적의 병력이 정돈되어 장차 쳐들어오려 하면 어떻게 상대하여야 합니까[”

대답하였다. “먼저 적이 아끼는 곳을 빼앗으면 우리의 진퇴를 따를 것이다.”

孫子設爲或者之問호되 敵人甚衆하고 其勢又整하여 將來薄我어든 以何法待之오 曰 我先奪其所愛면 則敵之進退勝敗를 皆聽於我矣라 所愛는 謂或據我便地하고 或掠我饒野하고 或利我糧道니 我能堅壁淸野하고 據險守要하면 則彼之進退 唯我是聽이라

孫子가 혹자의 질문을 가설하기를 “적의 병력이 매우 많고 형세가 또한 정돈되어 있으면서 장차 와서 우리를 압박하려 하면 무슨 방법으로 상대하여야 합니까[” 하고는, 대답하였다. “우리가 먼저 적이 아끼는 곳을 빼앗으면 적의 進退와 勝負를 모두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끼는 것은 혹은 우리의 편리한 지역을 점거하고 혹은 우리의 풍요로운 들을 노략질하고 혹은 우리의 군량 수송로를 이롭게 함을 이르니, 우리가 성벽을 굳게 지키고 들을 깨끗이 비우고서 험한 곳을 점거하고 요해처를 지키면 적의 진퇴를 오직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兵之情은 主速하니 乘人之不及하고 由不虞之道하여 攻其所不戒也니라

군대의 실정은 신속함을 위주로 하니, 신속하면 적이 미처 대비하지 못한 틈을 타고 적이 예상하지 않은 길을 경유하여 적이 경계(수비)하지 않는 곳을 공격하게 된다.

舊本은 速下에 再有一速字하니 謂兵之情이 惟主於神速이라 若速則乘人之倉卒하여 使不及爲備하고 行敵人所不虞之道하여 攻敵人所不備之處면 則敵驚擾散亂하여 而前後不相及하고 衆寡不相恃也라

舊本에는 ‘速’자 아래에 다시 한 ‘速’자가 있으니, 군대의 실정은 오직 신속함을 위주로 함을 이른다. 만약 신속히 하면 적이 창졸간에 경황이 없을 때를 틈타서 적으로 하여금 미처 대비하지 못하게 하고, 적이 예상하지 않은 곳으로 행군하여 적이 수비하지 않는 곳을 공격하니, 이렇게 하면 적이 놀라고 소요하고 흩어지고 혼란하여 앞과 뒤가 미처 서로 구원하지 못하고 병력이 많은 부대와 적은 부대가 서로 믿지 못할 것이다.


凡爲客之道는 深入則專이니 主人은 不克1)이니라

1) 爲客之道……主人不克:적지에 깊숙하게 들어가 싸우는 것을 客이라 하고, 자기 지역에서 싸우는 것을 主人이라고 하는바, 자기 지역에서 싸우면 병사들이 도망할 마음을 갖게 되어 승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릇 客이 된 방도는 깊이 쳐들어가면 병사들의 마음이 전일해지니, 주인은 이기지 못한다.

凡爲客之道는 深入重地면 心志專一이니 主在散地라 故로 不能勝也라 如李左車所謂信耳去國遠鬪하니 其鋒을 不可當1)이 是也라 此下는 皆言深入爲客之道하니라

1) 李左車……不可當:이 사례는 漢나라의 將軍인 韓信이 張耳와 함께 수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동쪽으로 趙나라를 공격할 적에, 廣武君 李左車가 趙王 歇과 成安君 陳餘에게 올린 계책이다. 자세한 내용은 79쪽 주 1) 참조.

무릇 客이 된 방도는 重地에 깊이 들어가면 병사들의 마음과 뜻이 전일해지니, 주인은 散地에 있게 되므로 승리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컨대 李左車가 이른바 ‘韓信과 張耳가 國都를 떠나 멀리 와서 싸우니, 그 예봉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이 이것이다. 이 아래는 모두 깊이 적지에 쳐들어가서 객이 된 방도를 말하였다.


掠於饒野하여 三軍足食이어든 謹養而勿勞하여 幷氣積力하고 運兵計謀하여 爲不可測이니라

풍요로운 들에서 노략질하여 三軍의 양식이 풍족하거든, 삼가 병사들을 기르고 수고롭게 하지 말아서 기운을 합하고 힘을 쌓으며 군대를 운용하고 계책을 세워서 적이 측량할 수 없게 하여야 한다.

掠於富饒之野하여 使三軍糧食豊足하고 堅壁自守하여 勤撫士卒하여 勿使勞苦하여 氣盛力全然後에 運用吾兵하여 爲不可測度之計謀1)하여 一擧而克之니 如王翦伐荊2)이 是也라

1) 運用吾兵 爲不可測度之計謀:≪孫子髓≫에는 본문의 ‘運兵計謀 爲不可測’을 “자기의 장병들로 하여금 자신(대장)의 계책을 측량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使自己士卒 不測吾計]” 하였다.

2) 王翦伐荊:王翦은 戰國時代 秦나라의 장군이고 荊은 楚나라를 이른다. 秦나라 장수 李信과 蒙恬이 20만 명을 거느리고 楚나라를 정벌하다가 楚軍의 역습을 받고 대패하자, 秦始皇은 王翦에게 60만 대군을 주어 楚나라를 정벌하도록 하였다. 楚나라에서는 전국의 병력을 총동원하여 秦軍에 대항하였다. 그러나 王翦은 楚나라 지경에 이르러 堡壘를 굳게 쌓아 진지를 지킬 뿐, 일체 싸우려 하지 않았다. 楚軍이 자주 도전하였으나 끝내 출병하지 않고 매일 병사들을 편히 쉬게 하면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넉넉히 보급하였으며 때로는 병사들과 함께 식사를 하여 사기를 북돋기도 하였다. 楚軍은 계속하여 도전하였으나 끝내 秦軍이 출병하지 않자 동쪽으로 군대를 철수시키기 시작하였다. 王翦은 비로소 전군을 이끌고 楚軍을 추격하여 대파하였다. ≪史記 권73 王翦列傳≫

풍요로운 들에서 노략질하여 삼군으로 하여금 양식을 풍족하게 하고는, 성벽을 스스로 굳게 지키면서 병사들을 부지런히 어루만져 수고롭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기운이 왕성하고 힘이 온전한 뒤에 우리 군대를 운용하여 적이 측량할 수 없는 계책을 세워서 일거에 이겨야 하니, 王翦이 荊나라를 정벌한 것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投之無所往이면 死且不北니

도망갈 곳이 없는 곳으로 병력을 투입하면 죽어도 패주하지 않으니,

投之危地하여 左右前後에 皆無所往이면 則守戰至死而不奔北也라

위태로운 지역으로 병력을 투입하여 前後左右에 모두 갈 곳이 없게 하면, 병사들이 끝까지 지키고 싸워서 죽음에 이르도록 도망하지 않게 된다.


死焉이면 不得士人盡力이리오

죽을 각오로 싸운다면 병사들이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旣殊死戰焉이면 有不得勝之理며 同在患難이면 安得不共竭其力이리오 一說에 旣不畏死하니 又焉不得士人之盡力乎리오하니 其義亦通1)이라 但前說은 作二句讀하고 後說은 作一句讀2)하니 後說이 理勝하니라

1) 一說……其義亦通:이 경우는 焉을 어조사로 보지 않고 ‘어찌’로 해석하여 ‘死하니 焉不得士人盡力이리오’로 읽어야 한다.

2) 前說……作一句讀:焉을 어조사로 보아 ‘死焉이면 不得士人盡力이리오’로 읽으면 두 구절이 되고, 焉을 부사인 ‘어찌’로 해석하면 한 문장이 되므로 말한 것이다.

이미 결사적으로 싸운다면 승리할 수 없는 이치가 있겠는가[ 똑같이 환란에 처해 있으면 어찌 그 힘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일설에 “이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또 어찌 병사들이 힘을 다함을 얻지 못하겠는가[” 하였으니, 그 뜻이 또한 통한다. 다만 앞의 說은 두 句節로 읽고 뒤의 說은 한 구절로 읽는데, 뒤의 설이 논리가 낫다.


兵士甚陷則不懼하고 無所往則固하고 深入則拘하고 不得已則鬪니라

병사들이 위급한 지역에 깊이 빠져있으면 두려워하지 않고, 갈 곳이 없으면 견고해지고, 깊이 쳐들어가면 구속되고, 부득이하면 싸운다.

凡三軍之士 陷在危亡之地하여 人持必死之心이면 則不畏懼하고 左右前後에 皆無所往이면 則人心堅固하고 深入重地면 則人心拘於一而不離散하고 勢不得已면 則人皆悉力而鬪니라 張預云 走無所適이면 則如拘係也라하니 亦通이라

무릇 삼군의 병사들이 위태롭고 멸망할 땅에 빠져있어서 사람마다 필사의 각오를 갖게 되면 적을 두려워하지 않고, 左右와 前後에 갈 곳이 없으면 병사들의 마음이 견고해지고, 重地에 깊이 들어가면 人心이 한 곳에 얽매여서 이산되지 않고, 형세가 부득이하면 병사들이 모두 힘을 다하여 결사적으로 싸운다.

張預가 말하기를 “도망함에 갈 곳이 없으면 매어둔 것과 같다.” 하니, 또한 통한다.


是故로 其兵이 不修而戒하며 不求而得하며 不約而親하며 不令而信이니라

이 때문에 군대가 정돈하지 않아도 경계가 철저하며, 구하지 않아도 마음이 얻어지며, 약속하지 않아도 친해지며, 호령하지 않아도 믿는 것이다.

以此之故로 其兵이 不待修整而自然戒懼하며 不待責罰而自得一心하며 不待約束而自然相親하며 不待號令而自然聽信하나니 言兵在死地면 上下同心也라 張預云 不待求索而得情意라하니 未知是否로라

이러한 이유로 병사들이 닦고 정돈하지 않아도 자연히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꾸짖고 벌주지 않아도 자연히 한마음이 되며, 약속하지 않아도 자연히 서로 친애하며, 호령하지 않아도 자연히 따르고 믿는 것이니, 이는 병사들이 死地에 있으면 上下가 마음을 같이함을 말한 것이다.

張預가 말하기를 “구하고 찾지 않아도 병사들의 情意를 얻는다.” 하였으니, 옳은지 모르겠다.


禁祥去疑면 至死無所之니라

요망함을 금지하고 의심스러운 계책을 제거하면, 병사들이 죽음에 이르도록 딴생각이 없게 된다.

禁止妖祥之事하고 絶去疑惑之計면 則士卒雖至死나 而無他慮也라 倘士卒未有必戰之心이면 則亦有假妖祥之言하여 以使衆者니 如田單以一卒爲神師하여 而破燕1)이 是也라

1) 田單以一卒爲神師 而破燕:神師는 神明스러운 스승을 가리킨다. 본문의 내용은 齊軍이 卽墨에서 燕軍에 포위되어 농성전을 벌일 적에 齊나라 장수 田單이 쓴 심리전의 일종이다. 자세한 내용은 81쪽 주 3) 참조.

요망한 일을 금지하고 의혹스러운 계책을 끊어버리면, 병사들이 비록 죽음에 이르더라도 딴생각이 없게 된다. 혹 병사들이 기필코 싸우려는 마음이 있지 않으면 또한 요망한 말을 가탁하여 병사들을 부리는 경우가 있으니, 예컨대 田單이 한 병졸을 神師로 만들어서 燕나라를 격파한 것이 이것이다.


吾士無餘財는 非惡(오)貨也요 無餘命은 非惡(오)壽也니라

우리 병사들이 남긴 재물이 없는 것은 재물을 싫어해서가 아니요, 남긴 목숨이 없는 것은 장수를 싫어해서가 아니다.

吾士卒無餘財는 非憎惡其貨也라 謂焚燒棄擲하여 無顧戀之心이요 無餘命은 非憎惡其壽也라 謂割捨委致하여 無苟生之憂慮니 皆不得已也라

우리 병사들이 남긴 재물이 없는 것은 財貨를 싫어해서가 아니요 이것을 불태우고 버려서 돌아보고 연연해하는 마음이 없음을 이른 것이며, 남긴 목숨이 없음은 장수를 싫어해서가 아니요 목숨을 버리고 바쳐서 구차히 살려는 근심이 없는 것이니, 이는 모두 부득이한 것이다.


令發之日에 士坐者涕沾襟하고 偃臥者涕交頤(이)하나니 投之無所往이면 則諸劌(귀)之勇也니라

출전 명령이 내리는 날에 병사들 중에 <출전하지 못하고> 앉아 있는 자들은 눈물이 옷깃을 적시고, 병으로 누워있는 자들은 눈물이 흘러 턱으로 내려가게 하여야 하니, 병력을 투입하여 갈 곳이 없게 만들면, 이것은 專諸와 曹沫의 용맹인 것이다.

將戰之日에 必先發令하나니 士聞約束하고 欲殊死鬪하여 坐者는 垂涕沾襟하고 偃臥者는 流涕交頤니 頤는 頷也라 相期必死라 故로 皆悲感하고 投之死地而無所往이라 故로 所向에 皆有專諸曹劌之勇이라 專諸는 公子光이 使刺吳王僚者1)요 劌는 當作沫2)이니 曹沫은 以勇力事魯莊公하여 執匕首以劫齊桓公者3)니 若曹劌는 乃智士요 非勇士也라

1) 專諸……使刺吳王僚者:專諸는 春秋時代 吳나라의 刺客이고, 公子 光은 뒤에 吳王이 된 闔閭이다. 楚나라에서 吳나라로 망명한 伍子胥(伍員)가 專諸의 賢能함을 알고 이를 吳나라의 公子 光에게 천거하였다. 公子 光은 吳王 餘祭의 아들인데, 吳나라의 王位가 숙부인 夷昧를 거쳐서 그 아들인 僚에게 돌아가자, 자신이 바로 吳나라의 적법한 왕위 계승자라는 생각으로 吳王 僚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吳王 僚가 公子 光의 저택을 방문했을 적에 吳王 僚의 측근 심복들이 긴 칼로 무장하고 삼엄한 경계를 펼쳤으나, 專諸는 대담무쌍하게 생선 요리의 뱃속에 비수를 숨기고 이를 吳王 僚에게 바치다가 비수를 꺼내 吳王을 찔러 죽인 다음, 호위무사들의 공격을 받고 비장하게 최후를 마쳤다. 이에 公子 光이 매복시켜 두었던 甲士들을 내보내어 吳王 僚의 호위무사들을 제압한 후 吳王의 자리에 올랐다. ≪史記 권86 刺客列傳≫

2) 劌 當作沫:이는 張預의 註를 따른 것이나, ≪孫子髓≫에는 이를 따르지 않고 본래대로 두었다.

3) 曹沫……執匕首以劫齊桓公者:曹沫은 춘추시대 魯나라 장수로 ≪春秋左氏傳≫에는 曹劇으로 표기되어 있다. 齊 桓公이 즉위한 뒤에 魯나라는 齊나라와 세 번 전쟁하였는데, 魯나라 曹沫이 지휘한 군대가 모두 패하여 적지 않은 영토를 빼앗겼다.

桓公 5년에 다시 싸워 魯나라 군대가 대패하자, 魯 莊公이 마침내 遂邑을 바치는 조건으로 강화를 청하였다. 이에 양국은 柯 땅에서 회맹하였는데, 회맹의 자리에서 曹沫이 비수를 들고 단상으로 올라가 桓公에게 강화의 조건으로 빼앗은 땅을 돌려달라고 위협하자, 桓公은 위협에 눌려 어쩔 수 없이 땅을 돌려줄 것을 허락하였다.

曹沫이 물러가자, 桓公이 노하여 曹沫을 죽이고 회맹을 파기하려 하였으나, 管仲이 말하기를 “曹沫이 위협하자 허락하시고는 신의를 곧바로 저버리고 죽이신다면, 마음은 다소 후련하시겠지만 제후들에게 信義를 얻지 못하여 천하의 협조를 잃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桓公이 管仲의 말을 따라 약속을 지켜 빼앗았던 땅을 돌려주고 맹약을 실천하였다. ≪史記 권32 齊太公世家≫

柯는 지명으로 지금의 河南省 黃縣의 경내에 있었다.

장차 전투하려는 날에 반드시 먼저 명령을 내리니, 병사들이 전투하는 약속(규정)을 듣고는 결사적으로 싸우고자 하여, <출전하지 못하고> 앉아있는 자들은 눈물을 떨구어 옷깃을 적시고 병으로 누워있는 자들은 눈물이 턱까지 흘러내리는 것이다. 頤는 턱이다. 병사들이 서로 필사적으로 싸울 것을 기약하기 때문에 모두 슬픈 감회를 품고 죽을 땅으로 투입되어 갈 곳이 없으므로, 향하는 곳에 모두 專諸와 曹沫의 용맹이 있게 되는 것이다.

專諸는 吳나라 公子 光이 吳王 僚를 찔러 죽이게 한 자이다. ‘劌’자는 마땅히 ‘沫’자가 되어야 하니, 曹沫은 용력으로 魯 莊公을 섬겨서 匕首를 잡고 齊 桓公을 위협한 자이니, 曹劌로 말하면 바로 지혜로운 선비요 勇士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