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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形 第十

제10편 地形의 활용


地形者는 山川險易之形也니 用兵에 不知地形이면 則戰守失利라 故로 地形이 爲兵之助요 計險阨遠近이 爲上將之道니 學者不可不察也니라

地形이란 山川의 험하고 평탄한 형세이니, 用兵할 적에 지형을 알지 못하면 전투와 수비할 적에 이로움을 잃는다. 그러므로 지형이 군대의 도움이 되며, 지형의 험하고 좁고 멀고 가까움을 계산하는 것이 上將軍이 된 도리이니, 배우는 자가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孫子曰 地形이 有通者하고 有掛者하고 有支者하고 有隘(애)者하고 有險者하고 有遠者하니라

孫子가 말하였다.

지형은 通形인 것이 있고, 掛形인 것이 있고, 支形인 것이 있고, 隘形인 것이 있고, 險形인 것이 있고, 遠形인 것이 있다.

通者는 彼此往來通達也요 掛者는 還返에 有所掛礙也요 支者는 各守險阻하여 互相支持也요 隘者는 兩山之間에 川谷狹隘也요 險者는 澗壑坑坎이 上下艱險也요 遠者는 彼此營壘 相去遙遠也니 此六者는 地之形勢也라

通形이란 피차가 오가서 통달하는 곳이요, 掛形이란 돌아옴에 걸리고 막힘이 있는 것이요, 支形이란 각각 험하고 막힌 곳을 지켜서 서로 대치하는 것이요, 隘形이란 두 산 사이에 냇물과 골짜기가 협소한 것이요, 險形이란 시냇물이 있고 골짜기와 구덩이가 있어서 오르내리기가 어렵고 험한 것이요, 遠形이란 피차의 진영과 보루의 거리가 먼 것이니, 이 여섯 가지는 땅의 형세이다.


我可以往이요 彼可以來를 曰通이니 通形者는 先居高陽하여 利糧道하여 以戰則利니라

우리도 갈 수 있고 적도 올 수 있는 것을 通形이라 하니, 통형인 곳에서는 먼저 높고 양지바른 곳을 차지하여 군량 수송로를 이롭게 하고서 전투하면 이롭다.

我亦可以往이요 彼亦可以來면 其地平易라 故로 名曰通이니 通形之地는 必先居隆高向陽之處하여 使糧道不絶하고 以與敵戰이면 則便利하니 所謂先處戰地以待敵이니 致人而不致於人者也라

우리 또한 갈 수 있고 적 또한 올 수 있으면 그 땅이 평탄하므로 通形이라 이름한 것이니, 통형인 곳에서는 반드시 먼저 지형이 높고 양지바른 곳을 차지하여 군량 수송로가 끊기지 않게 하고서 적과 싸우면 편리하다. 이른바 ‘먼저 싸울 곳에 처하여 적을 기다린다.’는 것이니, 남을 유인하여 오게 하여야 하고, 남에게 끌려가서는 안 된다.


可以往이요 難以返을 曰掛니 掛形者는 敵無備어든 出而勝之하고 敵若有備하여 出而不勝이면 難以返이니 不利하니라

갈 수는 있어도 돌아오기 어려운 것을 掛形이라 하니, 괘형인 곳에서는 적이 대비함이 없으면 출동하여 승리하고, 적이 만약 대비가 있어서 출동하였다가 승리하지 못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이롭지 못하다.

可以前往이요 難以退還曰掛니 掛形之地는 察知敵人하여 果無備어든 一出兵勝之 可也요 敵若有備하여 出兵與戰이라가 或不能勝이면 則難以返矣니 非我之所利也라

앞으로 나갈 수는 있으나 후퇴하여 돌아오기가 어려운 것을 掛形이라 하니, 괘형인 곳에서는 적을 자세히 살펴보아서 과연 대비함이 없거든 한번 출동하여 승리하는 것이 좋고, 적이 만약 대비함이 있어서 군대를 출동하여 싸웠다가 혹 승리하지 못하면 돌아오기가 어려우니, 우리에게 유리한 곳이 아니다.


我出而不利하고 彼出而不利를 曰支니 支形者는 敵雖利我나 我無出也하고 引而去之하여 令敵半出而擊之면 利니라

우리가 출동하여도 이롭지 못하고 적이 출동하여도 이롭지 못한 것을 支形이라 하니, 지형인 곳에서는 적이 비록 우리에게 이익을 주더라도 우리가 출동하지 말고, 군대를 이끌고 물러나서 적으로 하여금 반쯤 나오게 하고서 공격하면 이롭다.

我出兵擊彼하여 不得其利하고 彼出兵擊我하여 亦不得其利하여 兩相支持라 故로 名曰支니 支形之地는 敵若佯以利誘我라도 我愼不可出也요 當自引去하여 必俟敵人半出하여 行列未定而擊之면 必獲利矣라

우리가 군대를 출동시켜 적을 공격하여 이로움을 얻지 못하고, 적들이 군대를 출동시켜 우리를 공격해도 또한 이익을 얻지 못해서 두 군대가 서로 버틴다. 그러므로 支形이라 이름하였으니, 지형인 곳에서는 적이 만약 거짓 이익으로써 우리를 유인하더라도 우리는 조심하여 출동하지 말아야 하고, 마땅히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물러나서 반드시 적이 반쯤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적의 行列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을 때에 공격하면 반드시 승리를 얻는다.

隘形者는 我先居之호되 必盈之하여 以待敵이니 若敵先居之하여 盈而勿從하고 不盈而從之니라

隘形이란 우리가 먼저 점령하되 반드시 병력을 꽉 채우고서 적이 오기를 기다려야 하니, 만약 적이 먼저 애형을 점령하여 적군이 가득하면 적을 따라 싸우지 말고, 가득하지 않으면 따라 싸워야 한다.

隘形之地는 謂左右高山이요 中有平谷이니 我先居之호되 必盈滿山谷하여 以爲陣하여 使敵不得前進이 可也니 若敵先居其地하여 盈滿隘口而爲陣者는 愼勿從之하고 若雖守隘나 兵不盈滿이어든 以兵從之하고 分據其地하여 設奇擊之 亦可也라

隘形의 땅이란 왼쪽과 오른쪽에 높은 산이 있고 중앙에 평탄한 골짜기가 있음을 이르니, 우리가 먼저 점령하되 반드시 병력을 산골짜기에 가득 배치하여 진영을 만들어서 적으로 하여금 전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좋다.

만약 적이 먼저 이 지역을 차지하여 병력을 산골짜기의 입구에 가득 채워서 진영을 만든 경우에는 조심하여 따라 싸우지 말고, 만약 적이 비록 좁은 곳을 지키고 있으나 병력이 골짜기에 가득하지 않거든 병력을 내어 따라 싸우고, 그 지역을 나누어 점거해서 奇兵을 설치하여 습격하는 것 또한 좋다.


險形者는 我先居之호되 必居高陽하여 以待敵이니 若敵先居之어든 引而去之요 勿從也니라

險形이란 우리가 먼저 점령하되 반드시 먼저 높고 양지바른 곳에 주둔하여 적이 오기를 기다려야 하니, 만약 적이 먼저 점령하였으면 병력을 이끌고 물러날 것이요 따라 싸우지 말아야 한다.

險形之地는 謂溪澗坑坎이 險阻難行이니 我若先居之호되 必居隆高向陽之處하여 以待敵來而勝之요 若敵先居此地어든 我當引而去之하여 勿從也니라

險形의 땅이란 시냇물과 구덩이가 있어서 험하고 막혀 행군하기 어려운 곳을 이르니, 우리가 만약 먼저 점령하되 반드시 높고 양지바른 곳에 주둔하여 적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싸워 승리하여야 할 것이요, 만약 적이 이러한 지역을 점령하였으면 우리는 마땅히 병력을 이끌고 물러나서 따라 싸우지 말아야 한다.


遠形者는 勢均하여 難以挑戰이니 戰而不利니라

遠形이란 彼此의 軍勢가 대등하여 도전하기 어려운 곳이니, 이러한 곳에서 싸우면 승리하지 못한다.

遠形之地는 謂彼此相去遙遠하고 我與敵勢力又均1)이니 止可致彼來而擊之요 不可前去挑人而求戰也라 張賁本에 而字를 作則字하니라

1) 謂彼此相去遙遠 我與敵勢力又均:≪孫子髓≫에는 본문의 ‘遠形者 勢均’의 ‘勢均’을 “舊註에 ‘彼我의 强弱과 병력의 多寡가 서로 비슷한 것이다.’ 하였는데, 이는 잘못이다. ‘勢均’은 피아의 거리가 서로 비슷한 것이니, 서로의 거리가 약간 멀어서 먼저 도전하기 어려운 것이다.” 하고, 또 “뒤의 六敗에 보이는 勢均은 바로 强弱과 勇怯이 대등한 것이다.” 하였다.

遠形의 땅이란 피차의 거리가 멀고 우리와 적의 세력이 또 비등한 것을 이르니, 다만 적들이 오도록 해서 공격할 것이요, 앞서 가서 도전하여 싸움을 청해서는 안 된다.

張賁의 本에는 ‘而’자가 ‘則’자로 되어있다.


凡此六者는 地之道也니 將之至任이라 不可不察也니라

무릇 이 여섯 가지는 地形에 따라 승리하는 방도이니, 장수의 지극한 임무이다.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凡此六者는 因地形而制勝之道니 爲將帥之至任이라 不可不審察也니라

무릇 이 여섯 가지는 지형을 따라 승리하게 만드는 방도이니, 장수 된 자의 지극한 임무이다.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故로 兵은 有走者하고 有弛者하고 有陷者하고 有崩者하고 有亂者하고 有北者하니 凡此六者는 非天地之災요 將之過也니라

그러므로 군대는 敗走하는 것이 있고 解弛한 것이 있고 빠지는 것이 있고 무너지는 것이 있고 昏亂한 것이 있고 패하는 것이 있으니, 무릇 이 여섯 가지는 하늘과 땅의 재앙이 아니요 장수의 잘못인 것이다.

走者는 不量其力하여 以少擊衆也요 弛者는 將無法制하여 以馭其下也요 陷者는 兵弱而衆不齊也요 崩者는 偏裨忿怒而自戰하여 主將不能約束也요 亂者는 行陣失次하여 而自致亂也요 北者는 精銳不選하여 而自取其敗也니 兵有此六者는 非天地之災요 爲將者之過也라

敗走란 그 힘을 헤아리지 아니하여 적은 병력으로 많은 적을 공격하는 것이요, 解弛란 장군이 법령으로 제재하여 아랫사람을 통제함이 없는 것이요, 빠진다는 것은 병력이 약하고 무리가 통일되지 못한 것이요, 무너진다는 것은 偏裨들이 분노하고 제멋대로 싸워서 主將이 능히 단속하지 못하는 것이요, 昏亂이란 行陣이 차례를 잃어서 스스로 혼란에 이르는 것이요, 패한다는 것은 정예병을 선발하지 않아서 스스로 패함을 취하는 것이니, 군대에 이 여섯 가지가 있는 것은 하늘과 땅의 재앙이 아니요 장수 된 자의 잘못이다.


夫勢均에 以一擊十曰走요

彼此의 세력이 균등할 적에 我軍 한 명으로 敵軍 열 명을 공격하는 것을 ‘敗走’라 하고,

彼此勢均力敵이어늘 欲以一倍之少로 擊人十倍之多면 能無走乎아 是는 不量力而輕戰者也라 故로 名曰走니 走者는 恐被其圍而走不出也라

피차의 세력이 균등한데 1배의 적은 병력을 가지고 10배의 많은 병력을 공격하고자 하면 敗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는 자신의 힘을 헤아리지 않고 가볍게 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패주라 이름하니, 패주라는 것은 적에게 포위당해서 도주하여 탈출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卒强吏弱曰弛요

병사들이 강하고 관리들이 약한 것을 ‘解弛’라 하고,

士卒强悍하고 將吏懦弱하여 不能制馭면 是는 法令廢壞者也라 故로 名曰弛니 弛者는 如弓之弛而不能張也라

병사들이 강하고 사나우며 장수와 관리들이 나약하여 통제하지 못하면 이것은 법령이 폐지되고 무너진 것이다. 그러므로 이름하여 解弛라 하니, 解弛란 활이 풀려서 펼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吏强卒弱曰陷이요

관리가 강하고 병사들이 약한 것을 ‘빠진다’ 하고,

將吏剛勇欲敵이로되 而士卒怯弱이면 用之에 必至於敗亡이라 故로 名曰陷이니 陷者는 陷歿而不能出也라

장수와 관리가 강하고 용감하여 적과 싸우고자 하나 병사들이 겁내고 약하면 이들을 사용하여 싸울 경우 반드시 패망에 이른다. 그러므로 이름하여 빠진다고 하니, 빠진다는 것은 함몰하여 탈출하지 못하는 것이다.


大吏怒而不服하고 遇敵에 懟而自戰호되 將不知其能曰崩이요

큰 관리가 분노하여 복종하지 않고, 적을 만났을 때에 서로 원망하여 스스로 싸우려 하는데도 장군이 사람들의 재능을 알지 못하는 것을 ‘무너진다’ 하고,

大吏忿怒而不心服하고 遇敵에 懟怨而欲各自爲戰호되 主將이 不知其人之能否를 名之曰崩1)이니 崩者는 如山之崩墜也라 若伍參謂晉之從政者新하여 未能行令하고 其佐先縠(곡)이 剛愎(퍅)不仁하여 未肯用命하고 三帥專行不獲하여 聽而無上하니 衆無適從이라 此行也에 晉師必敗2)라하고 又魏錡(의)求公族하고 趙旃(전)求卿이라가 皆未得而怒러니 俱使楚한대 郤(각)克曰 二憾이 往矣라 弗備면 必敗라한대 隨士會曰 若二子怒楚면 楚人乘我하리니 喪師無日矣라하고 晉伐秦에 荀偃行令曰 鷄鳴而駕하여 唯予馬首是瞻하라한대 欒黶(난암)怒曰 晉國之命이 未有是也라하고 遂棄之而歸3)하고 秦伐晉에 趙穿이 怒臾騈(유병)之佐上軍也하여 自以其屬出4)하니 凡此之類 皆是也라

1) 主將……名之曰崩:≪孫子髓≫에는 “舊註에 본문의 ‘將不知其能曰崩’을 ‘장수가 부하들의 능하고 능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고서 그의 싸움을 허락하는 것이다.’ 하였으니, 잘못이다. 偏裨가 主將에게 복종하지 않아 적을 만나 제멋대로 싸우면 그가 강하고 사납고 분통을 터뜨려 윗사람의 명령을 따르지 않음을 알 수 있으니, 어찌 다시 그의 능하고 능하지 않음을 논하겠는가. ‘不知其能’은 ‘어떻게 할 수 없다.[無如之何]’라는 말과 같으니, 다시 군을 제대로 통솔할 수 없는 것이다.” 하였다.

2) 伍參謂晉之從政者新……晉師必敗:B.C. 597년 晉나라와의 전쟁을 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楚나라의 伍參이 楚나라 군주를 설득하며 한 말로 자세한 내용은 269쪽 주 2) 참조.

3) 魏錡(의)求公族……遂棄之而歸:이 내용 역시 위의 사례와 연결된 것으로 ≪春秋左氏傳≫ 宣公 12년에 그대로 보인다.

4) 秦伐晉……自以其屬出:이 내용은 魯 文公 겨울 12년에 晉나라와 秦나라가 河西에서 싸울 때 있었던 사례로, ≪春秋左氏傳≫ 文公 12년에 그대로 보인다.

큰 관리가 분노하여 마음에 복종하지 않고, 적을 만났을 적에 서로 원망하여 각자 싸우고자 하는데도 主將이 그 부하들의 능하고 능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는 것을 이름하여 무너진다 하니, 무너진다는 것은 산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楚나라의 伍參이 말하기를 “晉나라의 정사에 종사하는 자들이 새로 임명되어서 명령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보좌인 先縠의 성질이 강하고 고집스러우며 인자하지 못해서 윗사람의 명령을 기꺼이 따르려 하지 않으며, 세 장수가 마음대로 행동하고 뜻을 얻지 못해서 윗사람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 무리(兵士)들이 누구를 따라야 할지 모른다. 이번 걸음에 晉나라 병사가 반드시 패할 것이다.” 하였으며, 또 晉나라의 魏錡가 公族이 되기를 요구하고 趙旃이 卿이 되기를 요구하였으나 모두 얻지 못하여 분노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함께 楚나라에 사신 가자, 郤克이 말하기를 “감정을 품은 두 사람이 갔으니,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반드시 楚나라에게 패할 것이다.” 하였으며, 隨士會는 말하기를 “만약 두 사람이 초나라를 분노하게 만들면 초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공격할 것이니, 당장에 군대를 잃을 것이다.” 하였다.

晉나라가 秦나라를 정벌할 적에 晉나라의 荀偃이 명령하기를 “닭이 울면 수레에 멍에하여 오직 나의 말머리를 보고 따라오라.” 하자, 欒黶이 노하여 말하기를 “晉나라의 명령이 이러한 적은 있지 않았다.” 하고, 마침내 荀偃을 버리고 돌아갔으며, 秦나라가 晉나라를 정벌할 적에 晉나라의 趙穿은 臾騈이 上軍을 보좌하는 것에 노하여 스스로 자기의 병력을 거느리고 출동하였으니, 무릇 이러한 따위가 모두 이것이다.


將弱不嚴하고 敎道不明하여 吏卒無常하여 陳兵縱橫曰亂이요

장수가 나약하고 엄격하지 못하며 가르치는 방도가 분명하지 못하여 관리와 병졸들이 일정하게 지킴이 없어서 군대를 縱으로 橫으로 어지럽게 진열한 것을 ‘混亂’이라 하고,

大將怯弱하여 而號令不嚴하고 敎閱之道를 不依古法하여 吏與卒皆無常守之職1)하여 陳設兵之行列이 或縱或橫하여 皆無節制를 名之曰亂이니 亂者는 自亂其軍而引人之勝也라

1) 吏與卒皆無常守之職:≪孫子髓≫에는 “舊註에 본문의 ‘吏卒無常’을 ‘관리(비장)는 일정한 병졸이 없고 병졸은 일정한 관리(상관)가 없는 것이다.[吏無常卒 卒無常吏]’ 하였으니, 이는 李衛公의 말을 인하여 잘못 해석한 것이다. 이는 단지 장수가 엄격하지 않으면 관리와 병사들이 縱橫으로 나열하여 무질서해서 떳떳한 제도를 지키지 않아 혼란한 것이다.” 하였다.

대장이 겁이 많고 나약하여 호령이 엄격하지 못하고, 병사들을 가르치고 사열하는 방법을 옛 법을 따르지 아니하여, 관리와 병사들이 모두 떳떳하게 지키는 직책이 없어서, 군대의 行列을 진열한 것이 혹은 縱으로 하고 혹은 橫으로 하여 모두 절제가 없는 것을 이름하여 混亂이라 하니, 혼란이란 스스로 자기 군대를 혼란하게 만들어서 적이 승리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將不能料敵하여 以少合衆하고 以弱擊强하며 兵無選鋒曰北니

장수가 적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여 적은 병력으로 많은 병력과 교전하고 약한 병력으로 강한 적을 공격하며, 선발된 선봉부대가 없는 것을 ‘敗北’라 하니,

大將이 不能料敵之强弱虛實하여 以己之寡少로 合人之衆多하고 以己之怯弱으로 擊人之强盛하며 兵又無簡選精銳之士하여 使爲之先鋒하여 以倡勇陷敵을 名之曰北니 北者는 謂不能面鬪하고 但背之而走也라 凡戰에 必用精銳爲先鋒이니 一則壯吾志요 一則挫敵威니 如曹操以張遼爲先鋒하여 而敗鮮卑1)하고 謝玄以劉牢之領精銳하여 以拒苻堅2)이 是也라 北者는 謂人以面爲南하고 以背爲北하니 今棄甲曳兵而走하여 不復面敵이라 故로 以兵敗爲北也라 一音作背하니 亦通이라

1) 曹操以張遼爲先鋒 而敗鮮卑:後漢 獻帝 建安 12년(207)에 曹操가 遼東의 白狼山에 오르다가 갑자기 鮮卑族과 맞닥뜨렸는데, 그 군세가 매우 강성하였다. 曹操가 戰車를 겹겹이 배열하고 그 뒤에 병사들을 배치하였으나, 갑옷을 입은 병사가 적어서 좌우가 모두 두려워하였다. 曹操가 높은 곳에 올라가 오랑캐의 진영이 정돈되지 않았음을 보고 張遼를 先鋒으로 삼아 공격하게 하였다. 이에 오랑캐의 무리가 크게 무너져 그 우두머리 蹋頓과 名王을 참수하였으며, 오랑캐와 漢族의 병사로서 항복한 자가 20여만 명에 달하였다. ≪三國志 권1 武帝紀≫

2) 謝玄以劉牢之領精銳 以拒苻堅:東晉 太元 8년(383)에 前秦의 苻堅이 직접 東晉으로 진격하자, 東晉의 謝玄은 廣陵相 劉牢之의 정예부대 5천 명을 선봉으로 내보냈다. 이에 劉牢之가 곧바로 洛澗으로 진격하여 적장 梁成과 그의 아우 梁雲을 참수하니, 梁成의 보병과 기병이 붕괴되어 淮水로 달아났다. ≪晉書 권79 謝玄列傳≫ 자세한 내용은 88쪽 주 1)과 183쪽 아래 단락 주 1) 참조.

대장이 적의 강하고 약함과 허하고 실함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여 자기의 적은 병력으로 적의 많은 병력과 교전하고, 자기의 겁이 많고 나약한 군대로 적의 강성한 군대를 공격하며, 또한 정예로운 병사들을 선발하여 선봉대로 삼아서 용맹함을 창도하여 적을 함락시키지 못하는 것을 이름하여 敗北라 하니, 패배란 적을 상대하여 싸우지 못하고 다만 적을 등지고 도망하는 것이다.

무릇 싸울 적에는 반드시 정예병을 사용하여 선봉으로 삼아야 하니, 한편으로는 우리 병사들의 의지를 굳세게 하고 한편으로는 적의 위엄을 꺾는 것이니, 예컨대 曹操가 張遼를 선봉장으로 삼아서 鮮卑族을 패퇴시키고, 謝玄이 劉牢之로 하여금 정예병을 거느리고 苻堅을 막게 한 것이 이것이다.

北라는 것은 사람이 얼굴을 남쪽으로 삼고 등을 북쪽으로 삼는 것을 이르니, 이제 갑옷을 버리고 병기를 이끌고 도망하여 다시는 적에게 얼굴을 들고 대항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군대가 패하는 것을 北라 하는 것이다. 한 本에는 音이 背로 되어 있으니, 또한 통한다.


凡此六者는 敗之道也라 將之至任이니 不可不察也니라

무릇 이 여섯 가지는 패하는 이치이다. 장수의 지극한 임무이니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凡此六者는 取敗之道也라 爲將之至任이니 不可不審察也라

무릇 이 여섯 가지는 패하는 이치이다. 장수된 자의 지극한 임무이니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夫地形者는 兵之助也니

무릇 地形이라는 것은 군대의 도움(보조)이니,

夫地有通掛支隘險遠之形하니 用兵에 必因地形而制勝이라 故로 地形이 爲兵之助也라

땅에는 通形․掛形․支形․隘形․險形․遠形의 형태가 있으니, 用兵할 때에 반드시 地形에 따라 승리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지형이 군대의 도움이 되는 것이다.


料敵制勝하고 計險阨遠近은 上將之道也라

적을 헤아려 승리하게 만들고, 지형의 험하고 좁음과 멀고 가까움을 계산하는 것은 上將軍의 도리이다.

料敵之强弱虛實而制勝하고 計地之險阨遠近而用兵은 此乃上將之道也라

적의 강하고 약함과 허하고 실함을 헤아려 승리하게 만들고, 지형의 험하고 좁음과 멀고 가까움을 계산하여 용병함은, 이는 바로 상장군의 도리이다.


知此而用戰者는 必勝하고 不知此而用戰者는 必敗니라

이것을 알고 싸우는 자는 반드시 승리하고, 이것을 알지 못하고 싸우는 자는 반드시 패배한다.

知敵之情與地之形하여 而用兵以戰者는 必能取勝하고 不知敵之情與地之形하여 而用兵以戰者는 必能取敗라

적의 실정과 땅의 형세를 알아서 군대를 사용하여 싸우는 자는 반드시 승리하고, 적의 실정과 땅의 형세를 알지 못하고서 군대를 사용하여 싸우는 자는 반드시 패한다.


故로 戰道必勝이면 主曰無戰이라도 必戰이 可也요 戰道不勝이면 主曰必戰이라도 無戰이 可也니라

그러므로 싸우는 방도에 반드시 승리할 수 있으면 군주가 싸우지 말라고 지시하더라도 반드시 싸우는 것이 옳고, 싸우는 방도에 승리할 수 없으면 군주가 반드시 싸우라고 지시하더라도 싸우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다.

戰陳之道에 必能取勝이어늘 人君有命하여 不許之戰이면 雖違君命이라도 必戰이 可也요 戰陳之道에 不能取勝이어늘 人君有命하여 必與之戰이면 雖違君命이라도 無戰이 可也라 前篇所謂君命有所不受와 黃石公所謂出軍行師에 將在自專1)이 是也라

1) 黃石公所謂出軍行師 將在自專:이 내용은 ≪三略≫ <中略>에 그대로 보인다.

싸우고 陣 치는 방도에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데 군주가 명령을 내려서 싸움을 허락하지 않으면 비록 임금의 명령을 어기더라도 반드시 싸우는 것이 옳고, 싸우고 진 치는 방도에 승리를 취할 수 없는데 군주가 명령을 내려서 반드시 적과 싸우라고 하면 비록 임금의 명령을 어기더라도 싸우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다.

앞 篇에 이른바 ‘임금의 명령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과 黃石公의 이른바 ‘군대를 출동하고 병사를 운용함에 장수가 자기 마음대로 하여야 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故로 進不求名하고 退不避罪하며 惟民是保하고 而利於主면 國之寶也니라

그러므로 장수가 前進할 때에는 명예를 구하지 않고 後退할 때에는 죄를 피하지 않으며, 오직 백성을 보호하고 군주를 이롭게 하면 이것이 나라의 보배인 것이다.

進不求戰勝之名하고 退不避違命之罪1)하며 惟民命是保하고 而吾君是利면 此乃國家之寶也라

1) 進不求戰勝之名 退不避違命之罪:≪孫子髓≫에는 본문의 ‘進不求名’과 ‘退不避罪’를 윗글과 연계시켜, “싸우는 방도에 반드시 승리할 수 있으면 군주가 싸우지 말라고 지시하더라도 반드시 싸우는 것은 進不求名이고, 싸우는 방도에 승리할 수 없으면 군주가 반드시 싸우라고 지시하더라도 싸우지 않는 것은 退不避罪이다.” 하였다.

장수가 전진하여 싸워 승리했다는 명예를 구하지 않고 후퇴하여 군주의 명령을 어겼다는 죄를 피하지 않으며, 오직 백성의 생명을 보존하고 우리의 군주를 이롭게 하면 이것이 바로 국가의 보배인 것이다.


視卒如嬰兒라 故로 可與之赴深谿요

장수가 병사 보기를 어린아이와 같이 한다. 그러므로 병사들과 함께 깊은 계곡으로 달려갈 수 있으며,

視吾士卒을 如初生之嬰兒라 故로 可與同赴深谿之中이니 嬰兒乳哺養育生死之命은 皆懸於父母하고 士卒飢飽勞佚勝負之機는 皆係於大將하니 大將이 能視吾士卒을 如無知之嬰兒하여 凡疾痛勞苦者를 無不用心撫之也라 疾痛勞苦者를 旣能撫之어든 況肯棄之於死地而弗之恤乎아 此所以可與之赴深谿也라

장수가 우리의 병사들을 보기를 처음 태어난 어린아이와 같이 여기므로 함께 깊은 계곡의 가운데로 달려갈 수 있는 것이다. 어린아이에게 젖을 먹여 양육해서 살리고 죽이는 목숨이 모두 부모에게 달려있고, 병사들이 굶주리고 배부르며 수고롭고 편안하며 이기고 지는 기틀이 모두 대장에게 달려있으니, 대장이 자신의 병사들 보기를 무지한 어린아이와 같이 하여, 모든 질병과 노고를 마음 써서 어루만지지 않음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질병과 노고가 있는 자들을 이미 잘 어루만지는데, 하물며 병사들을 죽을 땅에 버려 구휼하지 않겠는가. 이 때문에 병사들과 함께 깊은 계곡으로 달려갈 수 있는 것이다.


視卒如愛子라 故로 可與之俱死니

병사들을 보기를 사랑하는 자식과 같이 한다. 그러므로 병사들과 함께 죽을 수 있는 것이니,

視吾士卒을 如親愛之子라 故로 可與之同死於危難之際니 上能視下如子면 則下必能視上如父니 豈有父在危難而子不致死者乎아 此는 吳起吮瘡(연창)에 而士卒奮1)하고 句踐投醪(료)에 而兵衆喜2)하니 仁人之兵은 上下一心3)이 皆此道也라

1) 吳起吮瘡(연창) 而士卒奮:이에 관해서는 본서 <吳起本傳> 참조.

2) 句踐投醪(료) 而兵衆喜:句踐은 春秋時代 越나라의 임금이다. 楚나라 장수 子發이 秦나라를 공격할 적에 양식이 떨어지자 使者를 보내어 임금에게 조달을 청하고, 아울러 그 어머니에게 문안을 하게 하였다. 子發의 어머니가 使者에게 병사들과 아들이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는지를 물으니, 使者가 병사들은 쭉정이 곡식을 나누어 먹으나, 장군은 朝夕으로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잘 지낸다고 대답하였다. 子發이 秦軍을 격파하고 돌아오자, 어머니는 문을 걸어 닫고 받아들이지 않은 채 사람을 시켜 아래와 같이 아들을 책망하였다.

“너는 越王 句踐이 吳나라를 칠 적에 하였던 일을 듣지 못했단 말인가. 어떤 이가 술 한 통을 바쳤는데 句踐은 사람을 시켜서 그 술을 강의 상류에 쏟아 붓게 하고서 병사들과 함께 강 하류에서 그 물을 마셨다고 한다. 한 통의 술을 강물에 쏟아 부었다고 해서 그 강물이 술맛을 낼 리가 없는데도 병사들은 모두 감격하여 목숨을 바쳐 싸우려 하였다. 그런데 너는 장수가 되어서 병사들이 쭉정이 곡식을 나누어 먹는데, 혼자서만 조석으로 좋은 음식을 먹었으니, 이게 어찌 된 일이냐[” ≪列女傳 권1 母儀傳≫

3) 仁人之兵 上下一心:이 내용은 ≪荀子≫ <議兵>에 보이며, 자세한 내용은 63쪽 주 2)와 135쪽 주 1) 참조.

우리의 병사들 보기를 사랑하는 자식과 같이 한다. 그러므로 병사들과 함께 위급하고 어려울 때에 죽을 수 있는 것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 보기를 자식과 같이 하면 아랫사람들이 반드시 윗사람 보기를 부모와 같이 하니, 어찌 부모가 위급하고 어려운 처지에 빠져있는데, 자식이 死力을 바치지 않는 경우가 있겠는가.

이는 吳起가 병사의 등창을 빨아주자 병사들이 분발하였고, 越王 句踐이 막걸리를 강물에 던지고 함께 마시자 병사들이 기뻐하였으니, 어진 사람의 군대 上下가 한마음이 되는 것이 모두 이 방도이다.


愛而不能令하며 厚而不能使하며 亂而不能治하면 譬如驕子하여 不可用也니라

사랑하지만 명령하지 못하며 厚生을 하여도 제대로 부리지 못하며 혼란하여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비유하건대 驕慢한 자식과 같아서 쓸 수가 없는 것이다.

能愛士卒如子로되 而不能制之以威令하고 能厚士卒之生이로되 而不能使之赴敵以進戰하고 視士卒擾亂不齊로되 而不能律之使治면 譬如驕養之子하여 必不可用也라

병사들 사랑하기를 자식과 같이 하나 위엄과 명령으로써 통제하지 못하고, 병사들의 給養을 좋게 하나 병사들로 하여금 적에게 달려 나가 싸우게 하지 못하고, 병사들이 혼란하여 통일되지 못함을 보고도 법률로 다스리지 못하면, 비유하건대 교만하게 기른 자식과 같아서 반드시 쓸 수가 없는 것이다.

〇 張預曰 恩不可專用이요 罰不可獨行이니 專用恩이면 則卒如驕子하여 而不能使하니 此는 曹公所以割髮而自刑1)이요 臥龍所以垂泣而行戮2)이며 楊素所以流血盈前而言笑自若3)이요 李靖所謂十殺其三하여 使畏我而不畏敵也4)라 專行罰이면 則士卒不親附하여 而不可用이니 此는 句踐所以投醪而飮士요 楚子所以撫軍如挾纊5)이요 吳起所以分衣食6)이요 闔閭所以同勞佚7)也라 在師之初六曰 師出以律8)이라하니 謂齊之以法也요 九二曰 師中은 承天寵이라하니 謂勸士以賞也라 尉繚子曰 不愛悅其心者는 不我用也요 不嚴畏其心者는 不我擧也9)라하니 故로 善將者는 愛與畏而已矣니라

1) 曹公所以割髮而自刑:曹公은 曹操이다. 曹操는 군대가 보리밭을 지나갈 경우에 항상 보리를 망가뜨리는 병사는 사형에 처한다는 군령을 내려, 騎兵들은 모두 말에서 내려 보리를 손으로 헤쳐 잡으면서 행군하였다.

그런데 한번은 曹操가 탄 말이 갑자기 보리밭으로 뛰어들어 군령을 범하게 되자, 主簿에게 죄를 논하도록 명령하니, 主簿는 “春秋의 義理에 벌은 존귀한 자에게 미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曹操는 “법을 만들어놓고 스스로 이를 범하면서 어떻게 아랫사람을 통솔하겠는가. 그러나 내가 軍의 원수로서 자살할 수야 없는 일이니, 내 스스로 형벌을 시행하겠노라.” 하고는, 칼을 잡아 머리카락을 잘라서 땅바닥에 던졌다. ≪三國志 권1 武帝紀≫

2) 臥龍所以垂泣而行戮:臥龍은 蜀漢의 승상 諸葛亮의 별호이고, 그가 눈물을 흘리며 죽인 부하는 馬謖(190〜228)이다. 建興 6년(228)에 蜀漢의 승상 諸葛亮이 魏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군대를 거느리고 漢中을 나서 祁山으로 향할 적에 馬謖은 선봉을 맡았다가 패배하고 감옥에 갇혀 죽었다. 자세한 내용은 77쪽 주 2) 참조.

3) 楊素所以流血盈前而言笑自若:楊素(544〜606)는 隋나라의 건국에 큰 공을 세워 越國公에 봉해지고 재상이 된 인물이다. 楊素는 임기응변에 있어서는 일정한 방편이 따로 없었으나, 대체로 군대를 다스림이 엄정해서 軍令을 어기는 자는 곧바로 참수하여 용서하는 법이 없었다. 적과 싸울 때마다 자주 부하들의 과실을 문책하여 참수하니, 많을 경우에는 백여 명이었으며 적을 경우에도 십수 명이 넘어 피가 흘러 앞에 가득하였으나,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며 태연자약하였다. 적과 對陣함에 이르러서는 먼저 1, 2백 명으로 하여금 적진으로 달려가게 하여 적진을 함락하면 괜찮지만, 만약 적진을 함락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자는 그 수를 불문하고 모두 참수하였다. ≪隋書 권48 楊素列傳≫

4) 李靖所謂十殺其三 使畏我而不畏敵也:李靖(571〜649)은 唐나라 초기의 名將으로, 그가 지은 ≪衛公兵法≫에 이르기를 “옛날에 장수 노릇을 가장 잘하는 자는 반드시 10명의 병사 중에 3명의 병사를 죽이고, 다음은 10명 중에 1명을 죽였으며, 세 번째는 敵國에 위엄을 떨쳤다. 훌륭한 장수는 三軍에 명령을 시행하여 三軍으로 하여금 나를 두려워하게 하고 적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것이니, 적을 두려워하는 자는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通典 권149 法制 雜敎令附≫

5) 楚子所以撫軍如挾纊:B.C. 597년 겨울에 楚子가 蕭나라를 정벌하였는데, 날씨가 몹시 추웠다. 申公 巫臣이 “병사들 가운데 추위로 떠는 자가 많습니다.”라고 아뢰자, 楚王이 三軍을 순시하며 병사들을 慰撫하고 勸勉하니, 三軍의 병사들은 모두 솜옷을 입은 것처럼 따뜻이 여겼다. ≪春秋左氏傳 宣公 12년≫

6) 吳起所以分衣食:이 내용은 본서 <吳起本傳> 참조.

7) 闔閭所以同勞佚:吳王 僚가 楚王이 죽은 틈을 타서 同母弟인 公子 掩餘와 燭庸으로 하여금 楚나라의 潛 땅을 포위 공격하게 하였다. 이 틈을 타 公子 光이 吳王 僚를 시해하고 즉위하니, 이가 바로 闔閭이다. 闔閭가 徐 사람을 시켜 掩餘와 燭庸을 잡아오게 하니, 두 公子가 楚나라로 망명하였다. 楚王이 이들에게 큰 땅을 떼어주어 봉하니, 令尹인 子西가 諫하기를 “吳王 光이 새로 나라를 차지하여 백성들을 친애하니, 이는 백성을 동원하여 전쟁에 사용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吳나라와 우호관계를 유지하더라도 오히려 그들이 쳐들어올까 염려되는데, 우리가 또 그들의 원수를 봉하여 거듭 노엽게 하면 不可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昭公 27년≫

8) 在師之初六曰 師出以律:≪周易≫ 師卦 初六에 “初六은 군대를 출동하되 規律에 맞게 함이니, 잘하지 못하면 승리하더라도 흉하다.[初六 師出以律 否臧 凶]”라고 보이는데, 朱子는 ≪周易本義≫에서 “군대를 출동하는 道는 마땅히 그 시초를 삼가야 하니, 規律에 맞으면 길하고 不善하면 흉하다. 점치는 자에게 마땅히 시작을 삼가고 법을 지키라고 경계한 것이다.”라고 註하였다.

9) 不愛悅其心者……不我擧也:이 내용은 ≪尉繚子≫ <攻權>에 그대로 보인다.

〇 張預가 말하기를 “은혜만을 써서도 안 되고 형벌만을 행해서도 안 된다.” 하였다.

오로지 은혜만을 쓰면 병사들이 교만한 자식과 같아서 부리지 못하니, 이는 曹公(曹操)이 자기 머리털을 잘라 스스로 형벌한 이유이고, 臥龍선생(諸葛亮)이 눈물을 흘리고 부하를 죽인 이유이며, 楊素가 병사들을 죽여 피가 흘러 앞에 가득하여도 말과 웃음이 태연했던 이유이고, 李靖이 이른바 “10명 중에 3명을 죽여서 병사들로 하여금 나를 두려워하고 적을 두려워하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오로지 형벌만을 행하면 병사들이 친히 따르지 않아서 쓸 수가 없으니, 이는 越王 句踐이 막걸리를 강물에 던져서 병사들에게 마시게 한 이유이고, 楚王이 병사들을 잘 어루만져서 솜옷을 입은 것과 같이 따뜻하게 한 이유이고, 吳起가 병사들과 의복과 음식을 나눈 이유이고, 闔閭가 병사들과 수고로움과 편안함을 함께한 이유이다.

≪周易≫ 師卦 初六 爻辭에 이르기를 “군대를 출동하기를 규율로써 한다.” 하였으니 法으로써 통일시킴을 이르고, 九二 象傳에 이르기를 “군대가 中(중도)에 있음은 하늘(임금)의 은총을 받는 것이다.” 하였으니 병사들을 賞으로써 권면함을 이른다.

≪尉繚子≫에 이르기를 “장병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자는 내가 쓸 수 없고, 장병들의 마음을 엄하게 하고 두렵게 하지 못하는 자는 내가 출동하여 이용할 수 없다.” 하였다. 그러므로 군대를 잘 거느리는 자는 사랑과 위엄뿐인 것이다.


知吾卒之可以擊이요 而不知敵之不可擊이면 勝之半也요

장수가 우리 병사들이 용감하여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것만 알고, 적이 대비함이 있어 공격할 수 없는 것을 알지 못하면 승리의 절반이요,

但知吾士卒之精銳勇敢하여 可用之而擊하고 而不知敵勢强而且實하여 有不可擊之形이면 此는 知己, 不知彼하여 而一勝一負者라 故로 曰勝之半也라하니라

장수가 다만 우리 병사들이 정예롭고 용감해서 이들을 사용하여 공격할 수 있는 것만 알고, 적의 군세가 강하고 또 충실하여 공격할 수 없는 형세가 있음을 알지 못하면, 이는 자기만 알고 적을 알지 못하여 한 번 승리하고 한 번 지는 자이다. 그러므로 ‘승리의 절반’이라고 한 것이다.


知敵之可擊이요 而不知吾卒之不可以擊이면 勝之半也요

장수가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것만 알고, 우리 병사들이 적을 공격할 수 없는 것을 알지 못하면 승리의 절반이요,

知敵勢之虛弱하여 有可擊之形하고 而不知吾士卒之頹弊怯懦하여 不可用之以擊이면 此는 知彼而不知己者라 故로 亦曰勝之半也라하니라

적의 군세가 허약해서 공격할 수 있는 형세가 있는 것만 알고, 우리 병사들이 피폐하고 나약해서 이들을 사용하여 공격할 수 없음을 알지 못한다면, 이는 적만 알고 자기를 알지 못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또한 ‘승리의 절반’이라고 한 것이다.

○ 唐太宗曰 吾嘗臨陳에 先料敵心與己之心孰審然後에 彼를 可得而知焉이요 察敵氣與己之氣孰治然後에 我를 可得而知焉1)이라하니 蓋料心以審其治亂하고 察氣以見其强弱이면 則可戰與不可戰之形을 得矣라

1) 唐太宗曰……可得而知焉:이 내용은 ≪李衛公問對≫ 下에 그대로 보인다.

○ 唐 太宗이 말하기를 “내 일찍이 적진을 대할 적에 적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누가 더 자세히 살피는가를 헤아린 뒤에 저들을 알 수 있고, 적의 기운과 우리의 기운이 누가 잘 다스려졌는가를 잘 살핀 뒤에 우리를 알 수 있다.” 하였으니, 마음을 헤아려서 그 다스려지고 혼란함을 살피고 기운을 살펴서 그 강하고 약함을 안다면, 적과 싸울 수 있는가 싸울 수 없는가의 형세를 알게 될 것이다.


知敵之可擊이요 知吾卒之可以擊이로되 而不知地形之不可以戰이면 勝之半也니라

적을 공격할 수 있음을 알고 우리 병사들이 적을 공격할 수 있음을 알더라도, 地形이 싸울 수 없는 곳임을 알지 못하면 승리의 절반이다.

知敵勢之虛弱可擊하고 知吾士卒之精銳可用之以擊이로되 而不知地形之未便하여 不可以陳兵出奇而與之戰이면 亦曰勝之半也라 言知彼知己하고 又得地形之助라야 方可以全勝耳라

적의 형세가 허약하여 공격할 수 있는 것을 알고 우리 병사들이 정예로워 이들을 사용하여 공격할 수 있는 것을 알더라도, 지형이 불편하여 군대를 진열하고 기이한 계책을 내어 적과 싸워서는 안 되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이 또한 ‘승리의 절반’이라 하는 것이다. 이는 적을 알고 자기를 알고 또 지형의 도움을 얻어야, 비로소 온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故로 知兵者는 動而不迷하고 擧而不窮이니라

그러므로 兵法을 아는 자는 출동하면 혼미하지 않고 措處하면 곤궁하지 않은 것이다.

故로 知兵之將은 不妄動而動이면 則無迷誤之失하고 不輕擧而擧면 則無困弊之災하니 此는 識彼我之虛實하고 知地形之便利而戰也라

그러므로 병법을 아는 장수는 함부로 출동하지 아니하여 출동하면 혼미하거나 잘못되는 실수가 없고, 가볍게 조처하지 아니하여 조처하면 곤궁하고 피폐하는 재앙이 없으니, 이는 적과 우리의 虛實을 알고 地形의 편리함을 알고서 싸우기 때문이다.


故로 曰 知彼知己면 勝乃不殆하고 知天知地면 勝乃可全이라하니라

그러므로 병법에 이르기를 “적을 알고 우리를 알면 승리하여 마침내 위태롭지 않고, 天時를 알고 地利를 알면 승리를 온전히 할 수 있다.”라고 한 것이다.

故로 曰 知彼之虛實하고 知我之强弱이면 戰則必勝하여 不至於危殆矣요 知天時之順하고 知地利之便이면 戰勝之功을 又可以全得也라

그러므로 병법에 이르기를 “적의 虛實을 알고 우리의 强弱을 알면, 싸워 반드시 승리해서 위태로움에 이르지 않을 것이요, 天時의 순함을 알고 地利의 편리함을 알면, 싸워 승리하는 공을 또 온전히 얻을 수 있다.” 한 것이다.

○ 愚按 此篇에 言地形이로되 而中又以(陸)[勝]1)敗言者는 蓋恐後世泥勝負之理於地形하여 而不盡人事之當爲也라 故로 於地形則曰兵之助라하고 料敵制勝則曰上將之道也라하니 孫武之意 深矣로다

1) (陸)[勝]:저본의 ‘陸’은 뜻이 통하지 않으며, 아래에도 ‘勝負’라는 말이 보이므로, 文理에 의하여 바로잡았다.

○ 내가 살펴보건대 이 편에서는 地形을 말하였는데, 중간에 또 勝敗를 가지고 말한 것은 후세에 승패하는 이치를 지형에만 집착하여 사람의 일에 당연히 하여야 할 것을 다하지 못할까 두려워한 것이다. 그러므로 ‘地形’에서는 “군대의 도움이다.” 하였고, ‘料敵’과 ‘制勝’에서는 “上將軍의 도리이다.” 하였으니, 孫武의 뜻이 깊다.